document.onkeypress = getKey;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꽤나 매력적인 영화 한 편이 있다. 세기말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 '일라이(Book of Eli)' 영어 원제로는 '일라이의 책'이다. 영화는 2010년에 개봉하였는데 이 당시 아바타라는 대작이 함께 개봉하여 국내에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단, 미국 본토에서의 성적은 2위로 그리 나쁘지는 않았었나보다.

 영화는 폐허가 된 건물에 비쩍 마른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며 시작한다. 그리고 고양이가 응시하는 곳에 석궁을 들고 있는 한 인물, 고양이와 마주친 순간을 놓치지 않고 활을 당겨 고양이를 사냥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바베큐 타임... 그리고는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프렌차이즈점에서 증정하는 물티슈로 몸 구석구석을 정성스레 닦고, 옷장에서 나온 목을 메달아 죽은 시체를 보고는 놀라기는 커녕 거기서 건져낸 부츠를 신고 자신의 발에 딱 맞아 떨어지자 주인공은 어린아이처럼 신나한다.
 
 

 영화는 멸망해버린 세상에서 생존해나가는 주인공의 고단함을 이렇게 묘사한다. 그리고 내가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인 낡은 CD플레이어에서 나오는 'How can you mend a broken heart' 라는 노래와 함께 주인공의 고단한 모습이 덤덤하게 묘사되는 부분... 영화는 이렇게 초반부터 훌륭한 전개방식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주인공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고 왜 세상이 이렇게 망해버렸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느끼게 한다.

 이 영화는 액션씬 또한 나름 볼만하다. 주인공역을 맡은 덴젤 워싱턴이 대역 없이 이소룡의 제자로부터 직접 액션지도도 받았다고 하는데, 액션연기도 나름 잘 하였지만 이 영화의 최대 강점은 주인공 캐릭터를 정말 잘 설정하였다는 것이다. 묘한 분위기의 덴절 워싱턴이 야상자켓에 배낭을 메고, 항상 썬글라스를 끼고 황야를 걷는다.(지구대기가 망가져서 선글라스를 끼지 않으면 시력을 잃는다.) 그러다가 도적놈들이라도 나타나면 배낭에서 순식간에 정글도 한쌍을 꺼내어 적들을 순식간에 쓰러트리는 절제된 액션... 주인공의 캐릭터 설정을 정말 잘 한 영화이다.
 식량을 구하기 위해 어느 마을에 들어서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마을사람들과 몇번 마찰을 일으키게 되는데 그 마을의 수장인 카네기(게리 올드먼)의 눈에 무력이 출중한 주인공의 모습이 들어온다. 마을에서 조금이나마 나오는 물과 그를 통해 나온 부와 권력을 약속하지만 주인공은 또 다시 어디론가 길을 떠난다. 그런데... 카네기의 애인의 딸(솔라라)가 주인공과 만난 뒤로 웅얼거린 한 소절에 카네기는 눈이 번뜩인다.
 주인공이 항상 들고 다니며 읽는 책이 있었는데(이 시대는 모든 문명이 붕괴되어 책 자체가 매우 귀하며, 대부분의 사람이 문맹이었다. 글을 읽을줄 아는 사람들은 세기말 이전 번영기를 살았던 중년 이후의 생존자들 뿐이다.) 솔라라가 웅얼거린 소절은 바로 '성경'의 한소절이었던 것이다.  본색을 드러낸 마을의 수장이자 악당 카네기가 그렇게 애타게 찾고 있던 것 역시 '성경' 이었다. 그 이유인 즉....
 

"그건 무기다.
나약하고 절망한 자들의 마음을 겨냥한 무기라고.
그게 우리가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게 해 줄 거다.
이 망할 작은 마을보다 더 큰 걸 지배하려면 그게 필요해.
사방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그 책에서 꺼낸 말이기만 하면 뭐든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그렇다! 그에게있어 성경이란 이데올로기는 문명을 지배하는 강력한 무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영화에서는 세상이 멸망한 이유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세상을 망하게 하는 책이라며 사람들이 모든 성경을 불태워버린 것으로 나온다. 카네기는 물이라는 귀한 자원을 지녔고, 성경까지 지닌다면 다시금 문명을 재건하고 그 권력의 정점이 되고자 했던 것이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본격적인 주제가 나타난다. 바로 '성경과 문명의 비판'이다. 절대 성경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한 영화는 아니다. 다만 성경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성경은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일수도 있고, 추악한 지배이념과 무기가 될수도 있는 것이다.
 
 주인공은 성경을 어디론가 가져가기 위한 고행을 하고, 카네기는 그 성경을 빼앗으려하는 내용이 이후부터는 지속된다. 그 결과로 주인공도 카네기도 둘 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결국 카네기는 주인공으로부터 성경을 빼앗는데... 두둥(여기서부터 영화의 핵심적이 반전이에요. 그 책이 성경이었던 것은 반전축에 끼지 않습니다. 꼭 영화 보시고 이후부터 읽어주세요.)



  그 책은 점자로 된 것이었다. 그렇다! 주인공 일라이는 맹인이었다. 맹인인데 어떻게 그렇게 싸움을 잘해... 영화 초반부에 분명 동체에 따라 시선이 움직이던데... 등등 뻐적찌근한 의구심이 쏟아지지만, 그래도 놀라주는 척 하며 이 영화를 만든 감독님의 의도에 맞춰주기로 한다. 어렵게 성경을 찾은 카네기는 결국 성경을 읽지 못하고, 그의 마을은 성경을 찾느라 대부분의 부하를 잃고 지배력을 잃어 망해버린다.

 반면 성경을 매일 같이 읽어 이미 모든 내용을 외우고 있던 주인공은 약속의 장소에 가서 성경의 내용을 전달해준다. 그 이후 세상이 나아지고 있는지는 나오지 않지만 주인공을 따라온 솔라라는 주인공의 뜻을 이어받아 성경을 다시금 세상에 전파하는 전도사가 된다. 성경이 있었고 찬란한 문명이 있었지만 결국 망해버린 문명처럼 성경이 있다하더라도 그 말씀의 '실천'에 따라 다음 문명의 운명도 결정되리라..

 영화 말미에 주인공은 '성경을 지키려고만 했지 성경 말씀대로 살지 못했다.'며 자신의 인생여정에 대한 회한이 담긴 말을 꺼낸다. 이 영화는 아마도 '성경'을 대하는 문명의 태도에 대해 비판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경'은 다 같은 성경인데 누군가에게는 추악한 무기가 되고, 누군가는 성기사처럼 몸으로 소중히 외우고 지켜나갔지만 살육의 날들을 보낸다. 또 누군가는 오롯히 성경말씀대로 살 수도 있을 것이다. 종교란, 문명이란 무엇인가? 이 영화는 이에 대해 수없는 질문들을 던져주었다. 또한 영화의 영상미나 등장인물들의 캐릭터성이 매우 좋은 편이라 다소 엉성한 이야기구성에도 불구하고 꽤나 몰입이 잘 되었던 명작이라고 할 수 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