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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며 공부를 강요함으로써 부작용이 생겼던 많은 학생과 이 학생들이 과거의 상처를 딛고 개선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공부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우문현답으로 들릴지 모르나 '공부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너무 뻔한 대답인가? 아니다. 공부를 싫어한다는 것을 진단했다면 그 이후의 행동을 어떻게 해야할까? 진짜 큰 문제는 공부를 싫어하는데 공부를 강요함으로써 생긴다. 공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잔뜩 키워주기 때문에 결국 공부를 못하는 것은 물론 인격적인 면에서부터 큰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게 된다.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역시 너무 당연하게도 공부의 재미있는 면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공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주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데 특히 부모들은 이 이치를 무시한다. 왜냐하면 자녀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욕심이 있으면 지혜롭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욕심만 채우려 계속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결국 파국만 있을 뿐이다.

 내가 대안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학교에 들어올때만 하더라도 공부라면 치를 떨던 아이들이 1,2년 뒤엔 점차 공부를 하겠다는 각오와 마음을 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대안학교에 근무한 많은 교사들은 동일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대안학교에서의 생활을 통해 공부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이유는 일단 시험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도 평가도 하지 않고, 시험을 위해 억지로 공부할 필요도 없다. 공부에 대한 일제의 강요를 내려놓음으로써 아이들은 개선된다.
 또한 공부에 대한 강요를 내려놓는 것만이 이런 혁명적인 변화의 이유는 아니다. 공부가 싫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주어야 할 것은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이 아닌 본인들이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훌륭하고 멋진 주변어른들의 행동과 실천을 통해 영감과 감동을 느끼며 커간다. 본인도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행동이다. 아이에게 공부를 하도록 하고 싶으면, 스스로 공부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속적인 영감을 주어야한다.
 앞의 두가지가 이뤄지면 다음으로 진행할 것은 넓은 세상과 다양하고 깊은 삶의 경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아이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지 않고, 공부의 필요성을 깨우쳐주지 않은채 공부를 시키려해봤자 어떤 동기유발도 일어날 수 없다. 스스로 삶의 경험을 통해 공부의 필요성과 동기를 찾도록 도와야한다.

 이 모든 것을 충족했을때 비로소 호랑이 같이 무섭고 훌륭한 큰 스승을 모셔 아주 치열하고 치밀한 공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끼도록 돕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공부에 대한 강요로 인해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혹여 다른 아이들은 저렇게 훌륭한데, 내 아이는 왜 이럴까? 이런 푸념이나 늘어놓고 있지 않은가? 나도 다른 부모 못지 않게 많은 것을 퍼다주었는데 애가 왜 이럴까? 그것은 아이에게 정작 필요한 '영감'과 '사랑'은 주지 않은채 엉뚱한 것만 잔뜩 퍼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려고만 했지, 진정으로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지 않은 것이다. 이 말이 피상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난 대안학교 교사로서 경험을 통해 확신해서 하는 말이다. 심지어 부모도 아닌 내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고 사랑을 줄 때 아이들은 변화하였다. 하물며 부모가 아이에게 그런 것을 주었다면 그 아이는 엄청 더 큰 성장을 했을 것이다. 다만 부모가 그 이치를 깨우치지 못했을 뿐이다.

 남의 아이가 훌륭하고 부럽다고 푸념하지만, 사실 그 부모는 아이에게 참으로 적절하고 정확한 교육적 영감과 사랑을 아이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시간 바른 정성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것이 정확한 인과관계에 의해 흐른다. 아이에게서 문제가 드러난다면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욕심많은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봐야한다. 불교의 말처럼 탐하고, 분노하고, 어리석은 것에 의해 인간은 고통받는다. 또한 이 탐진치에 의해 아이들의 맑은 영혼은 다치는 것이다. 부모가 본인의 탐진치를 내려놓고 깨우침을 얻을 때 아이 또한 혁명적으로 변화한다.


 나는 대안학교에서 9년째 복무하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나의 교사로써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고 되물었었다. 어떤 선생님이 훌륭한 선생님인가? 뭍사람들로부터 스승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가? 입시위주의 오늘날의 교육현실에서는 이에 대해 답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아마도 요즘 가장 각광받는 선생님의 유형은 인정사정 볼것 없이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주는 선생님들일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아이들이 줄어 학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실정이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공부시키고 입학성적이 좋은 학교들은 서로 다퉈 입학하려고만 한다. 그럼에도 시대를 막론하고 참스승의 본질은 변치 않으리라 믿는다. 또한 아이들의 공부를 체계적으로 시켜주고 지속할 수 있도록 코칭해주어 좋은 입학성적을 내주는 선생님 역시 그 정도의 열정을 보이기 위해서는 참스승으로써의 자질이 충분하리라. 그러니 이들의 가치관은 어찌보면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교사의 첫번째 자질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은 인류의 모든 가치관에 선행하는 것이다. 인류가 이뤄놓은 지식, 도덕률... 이 모든 것 앞에 우선하는 가치관은 바로 인류애, 즉 사랑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유대관계에 대한 믿음, 하나같이 저마다 샛별 같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 인간 존재에 대한 원초적 믿음이 없는 자는 절대 스승일 수 없다. 스승은 인간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서로를 이끌어주는 존재이다. 그런데 인류에 대한 사랑 없이, 학생에 대한 끈끈한 유대관계가 없이 어떻게 스승일 수 있겠는가!

 좋은 교사의 두번째 자질은 끊임없이 공부하려는 열정이다. 이는 가르치는 기술보다 중요하다. 교사 스스로 자신이 사랑하고 열망하는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정진하는 자세가 있어야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끈을 놓는 순간 그는 교사이길 포기한 사람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공부시킬지에 대한 방법론적 고민에 얽매여있는 사람은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가장 뛰어난 스승은 스스로 공부하며 학생보다 몇걸음 앞에서 항상 함께 걸어가는 이다.

 좋은 교사의 세번째 자질은 뛰어남이다. 교사는 우수해야한다. 평생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공부해왔다면 적어도 학생들보다 지적, 인성적,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뒤떨어질 일이 없다. 진정한 선생은 학생보다 무조건 지적으로 뛰어나고, 많은 시간을 공부하며,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야한다.( 학부모의 주머니에 경제생활을 온전히 의존하는 교사는 진짜 교사가 아니다. 사실 보모이다...) 애초에 학생보다 뒤떨어지면 그것이 학생이지 선생은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학생보다 월등히 우수한 면모를 보여줘야 학생들이 동경하고 따른다. 학생들보다 멋도 배포도, 주머니사정도 여의치 않은 교사, 지적으로 인성적으로 매력없는 스승을 과연 누가 따를까... 교사는 뭍사람들보다 뛰어난 멋쟁이여야한다. 범접하지 못할 전공분야에 대한 광휘와 풍격이 있어야한다.

 훌륭한 교사의 네번째 자질은 가르치려는 열정이다. 앞의 세가지를 충족시키고도 가르치려는 열정이 빠져있으면 이는 연구원이거나, 기술자이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는 없다. 교사는 뭍사람들 앞에서길 좋아하고, 자신이 배운 것들을 주저리 주저리 떠들며 나눠주길 좋아하는 수다쟁이여야한다. 내가 열정적으로 배우고 연구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나누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이것을 재미있는 놀이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교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모든 면을 충족시킨 다음에야 다섯번째 자질로 말빨이 좋고, 사교성이 좋은 연예인 자질이다. 그런데 요즘은 몇몇 교사들은 이것이 지나쳐 연예인 신드롬에 걸렸는지... 이것을 가장 우선시하여 아이들에게 인기와 이벤트와 말빨로 겉멋만 가르치려 드는 교사들이 종종 있다. 재미있고 비권위적이면 물론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교사에게서는 아이들이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 단지 무료한 학교생활에 노리개일 뿐이다. 혹여 자신이 아이들로부터의 인기와 학부모로부터의 칭찬에 도취되어 있다면 경각심을 일깨우길 바린다. 하지만 앞의 네가지 자질을 충분히 충족한 사람이라면 이 다섯번째 자질을 갖출 경우 완벽히 훌륭한 스승일 수 있다. 아무리 교육방법론이 다양해졌다지만 여전히 가장 훌륭한 교육법은 교사의 재치넘치는 입담과 수업을 이끌어가는 연기력에 있다. 이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기술로써 매우 중요하다. 기실 성경이나 불경을 보라. 분명 예수님과 부처님, 그리고 공자는 상당히 말빨이 뛰어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들 경전에 그렇게 수려한 묘사와 문장이 있을 수가 없다. 교사는 뛰어난 입담꾼이자 연기자이다.

 물론 교사가 이 다섯가지를 다 충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앞의 두가지는 교사로써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며, 세번째 조건은 훌륭한 스승으로 진입하는 관문이고, 네번째 조건은 직업을 교사로 갖기 위해서는 필수조건이다.또한 다섯가지를 갖춘다면 아마도 전국적으로 많은 학생들을 키워내는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애초에는 내가 일하는 기관의 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컨텐츠를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몇가지 테마가 있었다. 자연, 텃밭, 산야초, 명상, 무예, 음악 등등 그리고 누구나 좋아하는 맛집 찾아 삼만리까지... 여하튼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잘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확실히 정리가 되었다. 나의 유튜브 채널은 단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공부하며 얻은 수확을 정리하는 공부방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꾸준히 정기적인 방송을 제작하려면 또 다시 선별된다. 단지 좋아하기만 할 뿐 남들보다 특출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은 컨텐츠로써 매력이 없다. 좋아하면서도 남들보다 특출난 정보를 가진 나만의 장점은 무엇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게 되며, 혹여 그런 것들이 없더라도 남들보다는 조금 앞선 정보를 보유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게된다. 즉,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 공부하기 딱 좋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채널을 운영하는 다른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을 엄청 많이 분석하고 시청해야한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나의 수준과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요즘은 각 분야의 내노라하는 핵인싸라면 대부분 유튜브를 하게 마련이다. 유튜브는 단지 초등학생들의 유희만이 아니다. 초등학생들의 실없는 장난놀음부터 상당히 전문적 지식과 기능을 보유한 사람들까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모두 유튜브를 한다. 오히려 요즘 세상에 자신을 주장할만한 정보나 기능을 보유하고도 '유튜브?! 그거 초딩들이나 하는거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정치, 경제, 인문일발 등등 각 분야의 정점에 선 인물들치고 유튜브를 안 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이 유튜브이다. 그렇다보니 그 사람들을 모두 직접 만나지는 못할테니 적어도 그 사람들의 유튜브 컨텐츠를 부지런히 모니터링 해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위치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모니터링의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된다. 정말 유튜브는 공부가 많이 된다!

 유튜브가 자기계발에 가져다주는 이점은 이 뿐만 아니다. 유튜브는 다른 사람에게 나의 주장이나 정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한다. 즉, 스피치 능력이 엄청 좋아진다. 또한 나라는 캐릭터를 매력있게 구성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무리 카메라를 보고 말하는 것이지만 막상 유튜브 컨텐츠를 제작하려 실행해보면 생각보다 말과 행동이 상당히 어색하고 잘 안 나온다는 것은 유튜브 컨텐츠를 제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찍은 영상을 나 스스로 모니터링 해보면 발표와 스피치를 할 때 내가 지금까지 좋지 않았던 언어, 행동습관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만든 영상은 정말 보고 또 보고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범대를 나와 수업시연을 여러번 해보았다. 하지만 심지어 사범대를 나온 나도 유튜브를 제작할때처럼 내 강의를 이렇게 치밀하게 영상 모니터링 해본 적이 없다. 유튜브 컨텐츠를 제작하다보면 내 강의에 대해 엄청난 모니터링을 하게 된다!

 또한 나라는 캐릭터를 매력있게 구축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지금은 이미지 시대이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요즘은 각 분야에서 사람들의 실력이 상당히 평준화 되어있다. 그러니만큼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말 한 마디, 복장과 외모의 스타일에 따라 그것이 타인에게 설득되는 것은 천지차이가 된다. 유튜브는 구독자와 조회수를 확보하기 위해, 즉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기 위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가진 장점과 매력지수는 무엇일까? 이 점에 대해 엄청 고민하고 연구하게 된다. 또한 유튜브 알고리즘의 특징은 '시청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썸네일이나 자극적인 제목으로 구독자나 조회수를 확보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으나 시청을 위해 접속한 시청자를 오랫동안 붙잡아 두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엄청난 스피치 능력과 이미지 메이킹을 고민하게 된다.

 이렇듯 유튜브에서 얻어진 능력은 단지 유튜브를 하는데만 쓰이지 않는다. 내 전문분야에 대한 치밀한 공부, 다른 전문가와 나를 비교하고 평가해보는 일, 내 강의에 대한 모니터링과 스피치 능력의 향상, 캐릭터의 구축과 이미지 메이킹... 이 모든 것은 현대사회에 정말 주요하게 필요한 능력들이다. 이러한 능력들을 얻고자 한다면 필히 유튜브라는 콜로세움에 뛰어들어 투전사가 되어 보아라. 그 실전성 톺은 경기장에서 엄청난 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가입한지 이제 막 2개월을 넘긴 '청음가야금 동호회'를 통해 매우 귀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국악한마당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국악을 다루는 방송인 '국악방송'에 출연하게 된 것이지요. '동호동호' 라는 우리나라의 국악 동호회를 소개하는 라디오방송인데, 인터넷방송으로 영상까지 방송된다고합니다. (아래 페이스북 주소를 통해 예고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509610762889310/posts/623380518179000/

 '청음가야금 동호회'는 국악을 전공하신 김선규 회장님을 중심으로 하는 '가야금 전문 동호회'입니다. '전문'이란 말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라 비록 동호회이지만 전공자 못지 않은 제대로 된 레슨진행과 연습영상 제출과 분석 시스템, 그리고 매 달 '무대훈련' 이란 것을 통해 매우 전문적인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동호회에요. 

 게다가 동호회라는 곳이 보통 너무 다양한 인간들이 모여들다보니 막상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 관계들 때문에 유지가 힘들지만 청음가야금 동호회의 경우 매우 엄격한 회장님과의 면담을 통해 가입이 되어 회원분들 역시 매우 교양있고 각자의 삶에 충실하신 분들입니다. 하여 정말 맑은 정신과 기운을 가지고 제대로 가야금을 배워보고 싶은 분들은 꼭 청음가야금 동호회에 입문하시길 바랍니다.

 비록 저는 가입한지 2개월 밖에 안되었음에도 대전 동호회 본원에 있는 무대에서 공연도 할 수 있었고, 국악방송에 출연도 할 수 있었습니다. 건강하고 건전한 동호회원분들과 함께 이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동호회의 장점인 것 같습니다. 보통 지역사회에 있는 가야금 입시학원에 다녔다면... 2개월 정도로 이런 경험들은 어림도 없었겠지요.

 

 

 

 

 

 

 

 

 가야금을 들고 이렇게 빨리 방송탈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정말 꿈같은 경험하고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기념사진도 건졌습니다.^^

 

 청음가야금동호회에는 회장님께서 이렇게 대전에 본관도 두시어 홀에서 공연까지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청음가약금 동호회는 회장님께서 전국을 다니시며 방문레슨을 진행하시어 대전 외에도 여러 지역에 레슨장소를 두고 있습니다. 아래 청음가야금 카페에 방문하시면 자세한 사항 알 수 있습니다.

청음가야금동호회 카페=>>

https://cafe.naver.com/topgaya

 

전국가야금동호회 "청음" : 네이버 카페

청음가야금동호회 입니다. 대전가야금, 춘천가야금, 경주가야금, 서울가야금 동호회원 모집중입니다

cafe.naver.com

 

 

 

 대한민국에서 유일무이한 '가야금 전문 동호회' 답게 정말 멋진 포스가 훌훌 느껴지지요?~~ 내년이면 20년이라는 엄청난 전통을 가지는 청음가야금 동호회가 앞으로도 길이길이 지속되어 우리나라 국악 지키미가 되었으면 합니다.^^



 난 이십대에서 삼십대 중반까지의 시간을 진보단체에서 보내며 많은 진보운동가와 예술인들을 만나보았다. 하지만 내가 처음 기대하였던대로 새 시대의 희망을 꿈꾸는 맑은 눈을 가진 사람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정말 진보운동권에 대한 환멸이 느껴질 정도의 사람들도 적잖케 만났었다.

 내가 환멸을 느꼈던 부류의 사람들은 결국 입으로는 정당하고 진보적인 가치들을 떠들어대지만 정작 그 사람의 행동이나 인간 됨됨이는 정반대인 부류들이었다. 그들이 왜 진보주의자가 되었느냐하면, 이들의 특징은 대체로 자존감이 매우 떨어지고 열등감과 유년시절의 상처가 많다. 또한 욕심이 매우 많고 이기적이기 때문에 자신이 '1등' 이 아니라는 사실에 상당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자신의 주장이 꼭 세상의 정답이 되어야하고, 자신이 남들보다 위에 군림해야 된다는 영웅심리도 있는 것 같다. 기실 이런부류의 사람들이 열렬한 진보주의자가 되어 현 시대의 '1등' 들을 비판하고 끌어내리려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의 인간 됨됨이는 꼴통 부폐보수주의자와 기묘하게 닮아있다.

 결국 아름다운 가치와 이상을 내세우지만 이것이 자본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된다. 자신의 청춘을 바쳤던 일들이 아무런 자본과 이익이 없고, 궁핍한 중년의 모습으로 귀결됨과 동시에 진보주의자들의 타락은 시작된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아름다운 가치와 이상'을 판매상품으로 내세워 온갓 정부사업과 사회적 동정이라는 '자본'을 벌어들이는데 혈안이 된다. 또한 이를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하여 결국 권력을 얻는 도구로 활용하려한다. 결국 부폐한 보수주의자, 새 시대는 커녕 현 시대의 충실한 자본주의자가 된다. 입으로 바른말이라도 안하면 덜 얄미울텐데, 입으로는 온갓 아름다운 가치들을 말하니 그들의 가식이 더욱 역겨워보이기까지 하는 것이다.

 진보운동가이든, 예술인이든, 종교인이든 결국 '참사람'이 되어야한다. 오히려 이런 우아한 꼬리표도 없이 손에 굳은살 잔뜩 박혀있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더 사람됨됨이가 참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자신이 체계바라, 예수라도 되는듯 으시댈 동안 묵묵히 손에 박힌 굳은실 다독여가며 맑은 눈으로 삶을 살아가는 참사람들로 세상은 지켜진다.


  음악영화를 보며 진심 스릴러 공포영화보다 심장이 쫄깃하였다. 일단 배우들의 표정연기는 더 말할 필요도 없는 명연기였으며, 개인적으로 감독인 데이미언 셔젤이 진정 음악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전공이든 취미든 기악을 다루는 사람은 알거다... 합주연주에서 박자 하나 놓칠 때의 심징 쫄깃함을.... 감독은 그 심장쫄깃한 상황을 스릴러 저리가라 할 정도로 잘 캐치하여 화면에 담아내었고, 재즈합주 중 각종 악기와 악보가 역동적으로 넘어가는 영상기법은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영화를 시청할 수 있도록 유도하였다. 아마 감독이 영상을 담아내는 타이밍센스가 없었다면, 재즈를 모르는 사람에게 상당히 지루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재즈를 아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심장이 터져버릴 듯한 폭발력을 특유의 긴장감과  침묵 속에 담아내었다.


 영화가 표현하고자 한 주제의식은 매우 명확하다. 바로 예술가의 광기를 기가 막히게 관객들이 공감하도록 표현한 영화이다. 바로 그 표현력과 평범한듯 폭발력 넘치는 스토리 진행이 영화의 가장 뛰어난 점이다.

 더 완전함, 더 뛰어남... 그 신적인 미학에의 갈망은 모든 예술가들이 공감하는 것이다. 예술이란 사람으로 하여금 무언가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를 갈망하게 한다. 손이 물러터져버리든, 인간관계가 단절되든, 온갓 더럽고 치사한 알력싸움의 예술계에서 하루하루 버텨가면서도 그들이 갈애하는 것이 무엇인가! 마치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처럼... 그 아름다운 무언가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선 무언가를 갈망하는 것이다. 그 욕망, 그 광기 앞에서는 선악도 그 어떠한 경계도 무의미하다. 다만 그곳에 도달하였는가만 있다.


 주인공 앤드류도 플레처 교수도 모두 미친 사람이다. 둘은 그 지점에서 닮아있다. 피아의 경계가 없다. 서로에게 상처주고 비하하고, 치사하게 서로를 끌어내리고 파괴시키고... 이 모든 비인간적 행위들은 광기 앞에서 무색해진다. 그저 그 곳에 도달하였는가만 있을 뿐이다.

 결국 영화의 마지막에서 앤드류는 그 곳에 다달았다. 플레처 교수도 만족스럽게 사람을 키워냈다. 마지막 순간을 위해 그 이전에 어떤 파괴적이고 비인륜적 행위들이 있었느냐는 그 순간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영화는 그 이후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앤드류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탄탄대로를 걷는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되었을까? 음악을 그만두었을까? 아니면 플레처 교수의 옛 제자처럼 심적 불안감과 우울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을 하였을까?

 또한 영화는 관객들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일상의 희노애락과 평화로움에 만족하며 안전한 삶을 살고 있는가? 무언가 끝모를 것을 추구하는 광기를 지닌 삶을 사는가? 아니면 한때 사그라들 불꽃처럼 그 길을 멈추었는가? 혹은 광기 어린 예술가의 삶이 진정 행복하고 사람다운 삶인가?

 영화는 묻지만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주인공들은 그저 그 길을 추구하였고, 결국 얻어내었다. 그 팩트만 말하고 있다. 그것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옳은지 그른지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있다. 질문만 던지기에 더욱 훌륭한 영화였다.





 학교의 책들을 정리하다 매우 레어한 책을 발굴했다. 번뜩이는 생각은 '이거 절판된 희귀도서 아냐? 무지 비쌀듯...' 후욱후욱 숨을 몰아쉬며 중고도서에 이름을 검색해보았으나..... 그저 절판되었을뿐 원가보다 싸게 파는 도서같다...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순간을 경험한 뒤 책의 제목 자체가 워낙 나의 관심사라 또 다른 의미의 두근거림으로 책장을 넘겨 보았다. 책의 원제목은 'How to Meditation' 명상은 어떻게하는가? 이다. 저자인 로렌스 레산은 이 책 외에도 명상에 관한 책을 몇 개 더 지은 나름 명상전문가로 보이나 아쉽게도 많은 정보가 있지는 않았다.

 책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무난하고 단정하였다. 첫 장은 '우리는 왜 명상을 하는가' 이다. 이 책은 꽤나 예전에 쓰여졌음에도 명상에 대한 신비주의가 없이 매우 과학적, 심리적 차원에서 명상을 소개하고 있다. 그 어느부분보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명상이란 삶에서 도망치는 환상을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 삶을 위한 활력과 에너지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마지막장 '명상의 사회적 중요성'에서 저자는 명상에 대해 이렇게 정의내린다.

 "나는 명상의 진정한 목표는 우리가 잃어버렸던 자신의 어떤 부분이 '집으로 돌아온' 느낌을 갖고 더욱 완전한 인간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 책을 시작했다. 우리는 분명히 평온함과 안정, 즐거움, 일상생활에서 큰 효율성, 사랑하는 능력의 증가, 현실에 대한 더 깊은 관점을 얻기 위해서 명상을 한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처음에 가지고  시작하는 목표들이고, 그 목표들은 명상수련과 자신을 위해서 훌륭하고 현실적인 것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진정한 목표는 인간존재로서의 잠재력을 더욱 완전히 성취하게 되는 것이다."

 매우 실용주의적 입장에서 명상을 바라보고 있으며, 나 역시 명상을 대하는 태도는 신비주의가 아닌 실용주의이다. 그 전장들의 제목 '명상과 신비주의에 숨어있는 유혹의 함정들' 같은 내용들을 봐도 저자의 관점을 알 수 있다.

 또한 명상의 다양한 방법들을 매우 단정하게 소개하고 있다.응시의 명상, 호흡계산의 명상, 물방울 명상, 만트라 명상 등 다양한 명상들의 내용을 오류없이 간결하게 소개하고 있는 부분이 인상 깊다. 명상에 대한 삿된 오해없이 이해하기 쉬운 책이다.

 잘 알려지지도 않고, 그다지 값비싼 희귀도서도 아니지만 나름 간결하고 단정한 문장 속에 명상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는 좋은 책이다.



 가야금 공연을 위해 한복을 맞추기로 하였다. 하지만 아직은 가야금도 한복도 초보라서 한복을 맞추는데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니었다. 가야금 공연자들은 어떤 한복을 입는지, 그런 한복은 어디에서 맞춰야하는지 등등ㅠㅠ....

 춘천에는 중앙시장을 비롯하여 한복점들이 곳곳에 있어 어떤 곳에서 맞춰야 잘 맞췄다는 소문이 날까... 더욱 결정장애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

 춘천 시중심부가 아니라 만천리, 거두리 인근 시외곽에 고즈넋하게 자리잡은 한복점이 있어 궁금증이 일어났다. 한복이란 것이 보통 대여만해도 30~40만원에 직접 맞추려면 50만원은 훌쩍 넘기에 시내보다 조금 먼 거리는 전~~혀 문제되지 않았다. 그저 한복을 예쁘게 잘 만들어주실 분을 찾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웬지 시외곽으로 나들이 나가는 기분이 들어 좋고, 또 각종 시상경력과 자격증을 보유하신 연구소장님을 뵙는다는 것도 기대되었다.


 한복점 외부부터 범상치 않았다. 굉장히 세련된 외관에 잘 차려진 전원적인 카페느낌이었다. 보통 우리가 가지고 있는 고루한 인테리어의 한복점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색동저고리, 세련된 외관을 지니면서도 연구소장님의 경력이 말해주듯 또한 전통이 매우 잘 보존된 딱 내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내부인테리어는 더욱 마음에 들었다. 마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옷 디자인 하는 곳 같은 느낌이었다. 아! 이런 곳에서 나의 옷을 맞출 수 있다니...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 해질 정도였다.


 세련됨과 전통이 공존하는 공간일 수 있는 것은 알고보니 연구소장님과 따님 두 모녀가 함께 운영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춘천에서 경력 30년의 소장님, 한참동안 시내에서 운영하시다 시외곽으로 장소를 옮기셨다는데 내가 볼 때는 탁월한 선택이신 것 같다. 한복점은 접근성보다 이런 감수성과 멋과 퀄리티를 자극하는 것이 앞으로는 중요해질 것 같다.

 난 사실 요즘 지출이 많아 경제적으로 그렇게 넉넉하지 않아 너무 세련된 외관과 소장님의 경력에 주늑들어 있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국악인을 사랑하시는 소장님께서 정말 잘 해주셨다. 보통 남성 가야금 연주자가 입는 도포는 워낙 독특하여 맞추려면 가격이 많이 나가지만 소장님의 국악에 대한 애정으로 나로서는 소장님 같은 분의 한복을 하사받는 기분으로 양질의 한복을 맞출 수 있었다.

 무엇보다 마음씨 좋은 소장님과 좋은 대화도 나눌 수 있어 기분이 참 좋았다.



 기분 좋게 한복을 맞추고 나오면서도 외관의 정원을 한동안 둘러보았다. 정원에 깨진 항아리 위로 심어놓은 각종 꽃들, 주변의 숲들... 마치 드라마나 만화 속에 나오는 꽁꽁 숨겨진 예쁜 환상의 공간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복이란 것이 혼수복을 맞추든, 행사복을 맞추든, 혹은 일상에서 입을 옷을 맞추든 절대 가끔씩 입는 것이니 대충 맞춘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 같다. 왜냐하면 나의 문화적 수준을 표현하는 복장이기 때문에 어설픈 옷을 맞췄다가는 안목있는 사람들에게  망신 당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장님 같이 경력과 안목이 인증된 분께 맞춰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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