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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t7GLojatRhU


 난 진정한 예술은 그 바탕에 비극을 깔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생명의 삶과 운명은 비극일 수 밖에 없다. 모든 생명은 결국 죽음을 향해달려간다. 모든 만남의 끝은 이별이고 항상 생로병사의 결말로 끝이난다. 이것이 삶이 비극이고 삶에서 파생된 예술이 항상 그 바탕에는 비극적 요소를 깔고 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희극도 결국 비극에 그 바탕을 둔다. 삶의 희극적 상황은 희망과 그 좌절의 허망함에 근간을 둔다. 비극적 운명이 그 바탕에 있어 더 열렬히 웃고, 사랑하고, 찬란한 것이다. 순간의 카타르시스나 성령이나 해탈 같은 정신적 현상도 결국 필멸자로서 인간이기에 그 비극적 상황을 순간적으로 뛰어넘어감에 느껴지는 정서들이다.

 내가 가야금산조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가야금은 슬픈 곡조에서도 슬프고, 허학적인 곡조에서도 슬프고, 심지어 역동적인 휘모리에서도 슬프다. 가야금산조는 뭔가 계속 울고있다. 그 울음 때문에 가야금에 빠진 것이고 그 울음은 결국 모든 난것들의 운명이 비극임을 상징하는 것이다.

 아라리가 났네~ 나고 또 생이별한다. 그러다 그 슬픔이 극에 달해 마구 미쳐 뜀박질하다가 눈 한번 부릅뜨고 휘황찬란한 천지에 나를 맡겨 일여한 마음 으로 죽어버린다. 아니다. 이러한 죽음을 승화라고 한다. 비극과 희극과 해학의 광기에 미쳐날뛰다 그것마저 공함을 까달은 순간. 가야금산조는 기가 막히게 그러한 순간을 담아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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