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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의 신 마이클 조던, 애플의 스티브잡스, 오프라 윈프리, 헐리우드 영화계의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 그리고 전설적 영화배우이자 정치인 아놀드 슈워제네거, 현대 대중음악의 전설 비틀즈까지... 위에서 언급한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많은 위인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명상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명상은 구글과 IBM 등 실리콘벨리의 수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을 위해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다. 아직도 명상을 신비주의에 휩싸인 종교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매우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많은 '핵인싸'들이 명상을 해온 것일까? 이들 그룹의 공통점은 사회적인 자본과 명예, 그리고 권력을 거머쥐었다는 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거머쥐기 위해 굉장히 많은 내적 외적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했을 것이고, 그 와중에도 비범한 집중력과 인내심 그리고 창의력을 발휘해야 했다는 것이다. 이들 모두 실력으로 각자 분야의 정점에 선 인물들이기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과연 이들이 타고난 유전적, 환경적 요소들에 의해 그런 능력들을 가질 수 있던 것일까? 일단 기본적으로 그 분야에 타고난 자질이 있었음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라.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타고난 재능 한두가지 쯤은 있지 않은가? 다만 그것을 찾고 계발하지 못한 이유가 더 클 것이다. 명상은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찾도록 도와주며, 집중력과 창의력, 그리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과업을 성취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방법론'이다. 명상 그 자체는 어떤 종교적 '목적'을 가진 행위가 아니다. 삶을 보다 가치롭고 효과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방법론이다.



 명상은 '진짜 자신'을 찾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편견없는 '진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바로 이 '시점'의 전환이 명상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생각(에고의식)'이 진짜 자신이고, 세상이라 착각하고 산다. 하지만 모두 자신의 '생각'일 뿐 그것이 진짜 세상은 아니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 어떤 아저씨와 부딧히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날따라 기분이 매우 안 좋은 날이어서 그 아저씨가 슬쩍 쳐다보고는 그냥 가버리자 '저 아저씨는 정말 인격이 더럽고 못된 인생 패배자야. 짜증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 속에 그려진 그 '아저씨'가 진짜 그 사람일까? 물론 더 나쁜 사람일 수도 있고, 아주 좋은 사람일수도 있다. 다만 그 아저씨에 대한 판단은 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아예 할 필요가 없는 불필요한 생각일 뿐이다. 그 진짜 생각도 아닌 것에, 그 감정의 올가미에 자신을 묶어두어 한 십분 정도는 계속 자신의 머리 속에서 소설을 쓰며 '아저씨'를 미워하는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것이다. 하지만 이 마저도 미워하고 있는 대상은 '아저씨'가 아니라 잔뜩 화가 나서 미워하고 있는 자신의 감정을 미워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가? 단편적인 예를 든 것이지만 사실 삶의 대부분이 이와 같은 현상에 묶여있다. 자신이 진짜라 생각하고 골똘하고 고민하며 스트레스 받고 마음 쓰는 대부분의 것들은 허상이다. 그 허상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뇌용량을 소비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명상이란 이런 비효율적인 오류를 걷어내는 방법이다. 만약 제대로 된 명상을 실천하여 이 비효율적인 오류를 성공적으로 걷어낸다면 그 반대로 엄청난 양의 에너지와 뇌용량이 확보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에너지와 용량은 자연스럽게 집중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명상은 자신을 리부트 하는 것이다. 불필요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뻗은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걷어내고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자연상태로 돌려놓는 것이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휩싸여 있을 때는 오히려 삶의 효과적이고 현명한 판단을 하지 못한다. 또한 그 편견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로막기도한다. 자신 안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걷어냄으로써 삶에 있어서도 보다 분명하고 지혜로운 판단을 할 수 있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할 수 있다.

 명상은 또한 자존감을 높혀준다. 자존감이란 자아존중감이다. 자존감과 자존심은 차이가 있다. 대게 자존감이 낮을 경우 자존심이 높다. 그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학대하고 혹사시키는데 이는 자신에 대한 존중감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이 욕망하는 대상을 성취하고 타인에게 인정 받음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확보하려는 몸부림이다. 하지만 명상은 자신의 에고의식이 만들어낸 자아상을 내려놓도록 도와준다. 또한 그럼으로써 어느 정도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보게 해준다. 자기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시점과 에고의식이 동일시되어 버리면 자기를 바라보지 못한다. 한번도 본적 없는 대상을 어찌 사랑할 수 있겠는가? 자신을 객관화해서 바라볼 때 사랑스럽고 연민도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자기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스스로를 존중할 수 있는 것이다. 객관적으로 바라본 대상은 보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존중할 수 있다. 이렇게 스스로를 객관화함으로써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자존감이 높을 때 삶을 주체적이고 분명한 목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사람은 항상 타인의 기대와 사회적 욕망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 하지만 정작 스스로는 항상 결핍되어 있는 삶을 살게 된다.

 이처럼 명상이란 자신의 생각을 걷어내고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방법이다. 이를 통해 집중력, 창의력, 자존감 그리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며 삶의 방향성과 목표를 명확히 하는 주체성을 얻어 삶을 살아가는데 바탕이 되는 아주 중요한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방법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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