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ent.onkeypress = getKey;

 

 

 

般若波羅蜜多心經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반야심경'은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줄임말로서, '마하'는 '크다' 혹은 '대승'이며, '반야' 는 지혜를 뜻합니다. '바라밀    다'는 열반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뜻으로, 반야심경은 '큰 지혜로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마음에 새기는 경전'이며, '마    하'라는 의미에서 알 수 있듯 대승불교적인 색채가 있어 대중들이 쉽게 낭독할 수 있도록 아주 짧은 시구에 불교의 '공    사상'을 축약해서 넣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 時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舍利子 色不異空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 시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空不異色 色卽是空 空卽是色 受想行識 亦復如是 舍利子 是諸法空相 不生不滅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제법공상 불생불멸

 

不垢不淨 不增不減 是故 空中無色 無受想行識 無眼耳鼻舌身意 無色聲香 味觸法

불구부정 부증불감 시고 공중무색 무수상행식 무안이비설신의 무색성향 미촉법

 

無眼界 乃至 無意識界 無無明 亦無無明盡 乃至 無老死 亦無老死盡 無苦集滅道

무안계 내지 무의식계 무무명 역무무명진 내지 무노사 역무노사진 무고집멸도

 

無智亦無得 以無所得故 菩提薩 依般若波羅蜜多 故心無가애 無가애故 無有恐怖

무지역무득 이무소득고 보리살타 의반야바라밀다 고심무가애 무가애고 무유공포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三世諸佛 依般若波羅蜜多 故得阿뇩多羅三먁三菩提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 의반야바라밀다 고득아뇩다라삼약삼보리

 

故知般若波羅蜜多 是大神주 是大明주 是無上주 是無等等주 能除一切苦

고지반야바라밀다 시대신주 시대명주 시무상주 시무등등주 능제일체고

 

眞實不虛故說般若波羅蜜多 주卽說주曰,

진실불허고설반야바라밀다 주즉설주왈

 

揭諦揭諦 波羅揭諦 波羅僧揭諦 菩提 薩婆訶

아제아제 바라아제 바라승아제 모지 사바하*3번

 

우리말 반야심경.

관자재보살이 깊은 반야바라밀(열반에 이르는 지혜)을 행할 때 오온(색,수,상,행,식의 쌓임-물질, 감각, 지각, 의지, 인식)이 다 비었음을 비춰보고 일체 괴로움을 여의었느니라.

사리자여 물질이 허공과 다르지 않아서 물질이 곧 허공이고 허공이 곧 물질이며 감각, 지각, 의지, 인식도 그러니라.

사리자여 모든 법의 공한 모양은 생기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더럽고 깨끗한 것도 아니며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라.

그러므로 공한 가운데 물질도 없고 감각, 지각, 의지, 인식도 없고 눈, 귀, 코, 혀, 몸, 뜻도 없으며 형상, 소리, 향기, 맛, 촉감, 법도 없으며 눈의 영역 내지 인식의 영역도 없으며 무명도 없고 무명이 다함도 없으며 늙고 죽음도 없고 늙고 죽음이 다함도 없어서 괴로움, 번뇌, 열반, 수도도 없고 지혜도 없고 얻을 것도 없으니 얻을 것이 본래 없기 때문이니라.

보살이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마음에 걸림이 없고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게 되어 뒤바뀐 망상을 여의고 마침내 열반을 이루며 삼세에 모든 부처님도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위없이 높고 바르고 두루한 큰 깨달음을 이룩하느니라.

그러므로 알라. 반야바라밀은 크게 신력한 주문이며 가장 밝은 주문이고 위없이 높은 주문이며 동등함이 없는 주문이니 모든 괴로움을 없애주고 진실되고 허망하지 않으리라. 이에 반야바라밀다 주를 말하리라.

닿았노라 닿았노라 사바세계를 떠나 저 피안의 언덕에 닿았노라.* 세번

 

 

 반야심경은 읽고 있으면 마치 '없음의 경전' 같습니다. 대승불교에서 강조하는 '공(空) 사상'을 집약한 경전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반야심경은 '아무 것도 없다'는 허무주의를 말하는 것일까요? 절대 이 부분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불교의 '공사상'은 역설의 사상입니다. 즉, 모든 것을 다 없애버렸을 때 그 와중에 남아있는 '그 무엇'을 찾고자 하는 철학이지요. 그 무엇보다 확실한 '실존의 철학'인 셈입니다. 

 다 없다~ 없다~하다 마지막 구절에 가면 '큰 깨달음을 이룩하느니라.' '모든 괴로움을 없애주고 진실되고 허망하지 않으리라.' 라는 구절이 백미입니다. 바로 이 구절을 통해 반야심경이 이 세상의 허망함을 한탄한 경전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 마지막 구절을 통해 아무것도 없다는 의문과 절망이 한순간 확 뒤바뀌며 그 무언가가 있음을 직관하게 되는 것입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