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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에 넝쿨식물 줄기에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는 녀석들은 '조팝나무진딧물'이다. 이 진딧물들은 5월 엄청난 번식력을 자랑하며, 우르르 나무줄기에 달라붙어 뭍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지만(무심결에 봤다 정말 트라우마 생길 정도의 징그러움에 충격을 받는다.) 사실상 생태계에서는 최하위 계층의 곤충이다.

 

 진딧물은 거의 방어능력이 없기 때문에 천적 투성이이다. 거의 모든 곤충들의 먹이신세이지만 특히 무당벌레가 이 진딧물을 잘 먹는다. 하지만 진딧물들도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는다. 이들은 보디가드를 고용하기 때문이다!

 

 

 

 

...(아..사진 징그러...) 이 진딧물들의 보디가드는 바로 개미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댓가로 개미들을 보디가드로 고용한 것일까? 바로 배설물이다. 진딧물은 나무진액을 빨아먹으며 당분이 함유된 배설물을 방출한다. 그런데 이 당분이 많은 배설물이 개미들에게는 매력적인 식사가 된다. 그리하여 개미들은 진딧물을 지켜주는 댓가로 이 달콤한 배설물을 얻어가는 것이다.

 

 사실상 개미들의 입장에서 보면 진딧물 농사를 짓는 것이다. 개미는 농사꾼인 것이다. 사실 사람입장에서 소와 돼지를 사육한다고 생각하지만, 소나 돼지입장에서는 사람이 자신들을 온갓 야생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주는 것이다. 그 대가로 목숨과 고기를 주지만... 그래도 야생상태 때보다 엄청난 개체수로 번식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소나 돼지입장에서는 사람과 일종의 공생관계의 협약을 맺은 것이다. 즉 사람이 자신의 소유물들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환상일 수 있다. 사람은 그저 음식을 얻기 위해 엄청난 노동력과 에너지를 동원하여 가축과 농산물들의 번식과 보호를 도와주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진화론을 이야기하면 '자연선택'과 '적자생존' 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진화의 과정은 생각보다 엄청 복잡하게 이뤄진다. 이 단순한 법칙만이 자연과 생명의 법칙이 아니다. 기실 공생관계에 의해 진화가 이뤄지는 경우가 매우 많다. 어떤 생물들은 아예 공생관계를 염두해두고 생김새나 형질이 결정되기도 한다. 또한 개미나 진딧물처럼 자신들의 행동양식이 공생관계에 의해 결정지어지며 이로 인해 자신들의 개체수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에 '홀라키(Holarchy)라는 용어를 소개한다. 큰 개체 안의 작은 개체들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이 단어는 바로 작은 개체들의 공존과 공생이 큰 개체의 균형을 이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자연이란 보다 복잡하고 위대한 방식으로 진화해나간다.


 몇해 전에 에르반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었던 이유는... 슈뢰딩거라는 이름이 굉장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고양이가 생각나는 거시기였고, 생명에 대해 무진장 호기심이 많던 나는 마치 생명에 대한 심오한 비밀을 이 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뭔가 양자역학적으로다가) 생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펴자마자 실수였던 것을 깨달았다... 기실 분자물리학적 지식으로 가득했던 이 책은 과학적 교양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책이었다.

 그런데 동일한 제목의 도리언 '세이건' 이라는 코스모스꽃이 웬지 생각나는 자자가 지은 책이 있다고 하였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하였던가... 약간 겁을 먹었지만 그래도 생명에 대한 활활 타오르는 호기심으로 다시금 이 책을 펴보게 되었다.

 확실히 이 책은 에르빈 슈뢰딩거의 책에 비해 상당히 읽기가 편하다. 어려운 분자물리학적 지식이 아닌 생명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교양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절대 이 책의 내용들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글의 문맥은 분명 이해하였는데 책의 한장 한장을 넘길 때마다 무수한 영감과 생각들이 쏟아져나와 쉽사리 책장이 넘겨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서 묘사한 생명에 대한 해답을 보자.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 생명은 생명으로 된 순간부터 자신을 의식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자신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 않았다... 생명은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었다. 둘 사이의 중간물로서 폭포에 걸린 무지개처럼, 또는 불꽃처럼 물질을 통해 전달되는 한 현상이다. 생명은 물질은 아니지만, 그러나 욕망과 혐오를 느낄 정도로 민감하고 자신을 감지할 수 있게 된 물질의 음탕한 모습, 존재의 음란한 형식이었다. 또한 그것은 만물의 순결한 냉기 속에서 타오르는 비밀스러운 운동이며, 영야 섭취와 배설의 음탕한 불결이며, 어떻게 생겨나고 만들어지는지도 확실치 않은 불순물과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호흡이었다.

토마스만 <마의산> 중 -


아! 이 얼마나 놀라운 묘사인가! 나는 글도 음악도 관능미가 넘치는 글을 좋아한다. 이 책은 이런 문학의 내용들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생명을 바라봄에 있어 냉랭하고 차가운 과학적 시선에 독자들을 보다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린 마굴리스는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의 첫째 부인이고, 아들 도리언 세이건은 이들의 자녀이다.



 이 책은 어렵지 않은 내용들로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물에 대한 경쟁적이고 차가운 시선을 걷어내어 생명현상에는 보다 복잡하고 심오한 작용들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이 책의 내용 중 '켄타우로스이자 야누스'를 보자면,

 "미국의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는 전체가 각 부분의 합보다 더 큰 효력을 발휘하는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시너지Synergy'(협력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synergos에서 나온 말)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과학에서는 생명, 사랑, 행동을 모두 시너지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먼 옛날 어떤 화학 물질들이 물이나 기름 속에서 함께 협력했고, 생명은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박테리아로붜 원생생물 세포가 창발하고, 그러한 세포들로부터 동물이 창발한 데에 대해서도 역시 시너지가 작용된다.
 생무른 임의적인 유전자 변화에 의해 진화했고, 더욱이 그러한 벼놔는 불리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맹목적이고 우연한 돌연변이가 새로운 진화를 이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진화에서 나타난 커다란 격차는 별개의 진화 계통을 통해 이미 갈고 닦아져 있던, 정교한 구성 요소들 간의 공생적 합병에 의해 달성된 것이다. 새로운 생물 형태가 등장할 때마다 매번 다시 진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돌연변이로 생겨나서 자연 선택에 의해 유지되어 온 기존의 모듈들이 함께 협력하는 것이다. 이들이 연합하거나 합병하여 새로운 생물, 자연 선택에 의해 작용하고  작용받는 전혀 새로운 복합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찰스 다윈도 잘 인식하고 있었듯이 자연 선택만으로는 어떤 진화적 혁신도 창출할 수 없다. 오히려 자연 선택은 생존이나 생식능력이 부족한 놈들을 추려냄으로써 이전의 개량된 형질과 새로 만들어진 신종을 부단히 유지시킨다. 가능한 한 많은 자손을 남기려는 생물의 잠재려근 살아 남은 놈들이 소중히 돌보게 마련이다. 그러나 최초의 새로운 형질은 어딘가에서부터 발생해야만 한다. 시너지 효과로 보자면 별개의 두 형태가 협력작용을 하여 놀라운 제3의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생명이란 무엇인가> 중 -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가 기존에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편합한 논리로만 생명의 진화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양한 생물들의 시너지라는 장에서 보다 복잡미묘한 작용을 거쳐 생물의 진화가 창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생명에 대해 무척 다양한 시선과 사색의 거리를 매우 따뜻한 과학으로, 냉철한 문학으로 제공한다. 아마도 내 최고 애정하는 도서목록에 들어가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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