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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해 전에 에르반 슈뢰딩거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그 책을 읽었던 이유는... 슈뢰딩거라는 이름이 굉장히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은 고양이가 생각나는 거시기였고, 생명에 대해 무진장 호기심이 많던 나는 마치 생명에 대한 심오한 비밀을 이 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뭔가 양자역학적으로다가) 생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책을 펴자마자 실수였던 것을 깨달았다... 기실 분자물리학적 지식으로 가득했던 이 책은 과학적 교양이 부족했던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책이었다.

 그런데 동일한 제목의 도리언 '세이건' 이라는 코스모스꽃이 웬지 생각나는 자자가 지은 책이 있다고 하였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하였던가... 약간 겁을 먹었지만 그래도 생명에 대한 활활 타오르는 호기심으로 다시금 이 책을 펴보게 되었다.

 확실히 이 책은 에르빈 슈뢰딩거의 책에 비해 상당히 읽기가 편하다. 어려운 분자물리학적 지식이 아닌 생명과학에 대한 기본적인 교양만 있으면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절대 이 책의 내용들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글의 문맥은 분명 이해하였는데 책의 한장 한장을 넘길 때마다 무수한 영감과 생각들이 쏟아져나와 쉽사리 책장이 넘겨지지 않는다. 이 책에서 토마스 만의 소설 <마의 산>에서 묘사한 생명에 대한 해답을 보자.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그것을 몰랐다. 생명은 생명으로 된 순간부터 자신을 의식하고 있음에는 틀림없지만 자신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지 않았다... 생명은 물질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었다. 둘 사이의 중간물로서 폭포에 걸린 무지개처럼, 또는 불꽃처럼 물질을 통해 전달되는 한 현상이다. 생명은 물질은 아니지만, 그러나 욕망과 혐오를 느낄 정도로 민감하고 자신을 감지할 수 있게 된 물질의 음탕한 모습, 존재의 음란한 형식이었다. 또한 그것은 만물의 순결한 냉기 속에서 타오르는 비밀스러운 운동이며, 영야 섭취와 배설의 음탕한 불결이며, 어떻게 생겨나고 만들어지는지도 확실치 않은 불순물과 이산화탄소를 내보내는 호흡이었다.

토마스만 <마의산> 중 -


아! 이 얼마나 놀라운 묘사인가! 나는 글도 음악도 관능미가 넘치는 글을 좋아한다. 이 책은 이런 문학의 내용들을 적절히 인용하면서 생명을 바라봄에 있어 냉랭하고 차가운 과학적 시선에 독자들을 보다 신비로운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린 마굴리스는 <코스모스>로 유명한 칼 세이건의 첫째 부인이고, 아들 도리언 세이건은 이들의 자녀이다.



 이 책은 어렵지 않은 내용들로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생물에 대한 경쟁적이고 차가운 시선을 걷어내어 생명현상에는 보다 복잡하고 심오한 작용들이 있음을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이 책의 내용 중 '켄타우로스이자 야누스'를 보자면,

 "미국의 건축가 버크민스터 풀러는 전체가 각 부분의 합보다 더 큰 효력을 발휘하는 실체를 설명하기 위해 '시너지Synergy'(협력한다는 뜻의 그리스어 synergos에서 나온 말) 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과학에서는 생명, 사랑, 행동을 모두 시너지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먼 옛날 어떤 화학 물질들이 물이나 기름 속에서 함께 협력했고, 생명은 바로 그 결과물이었다. 박테리아로붜 원생생물 세포가 창발하고, 그러한 세포들로부터 동물이 창발한 데에 대해서도 역시 시너지가 작용된다.
 생무른 임의적인 유전자 변화에 의해 진화했고, 더욱이 그러한 벼놔는 불리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맹목적이고 우연한 돌연변이가 새로운 진화를 이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진화에서 나타난 커다란 격차는 별개의 진화 계통을 통해 이미 갈고 닦아져 있던, 정교한 구성 요소들 간의 공생적 합병에 의해 달성된 것이다. 새로운 생물 형태가 등장할 때마다 매번 다시 진화가 시작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돌연변이로 생겨나서 자연 선택에 의해 유지되어 온 기존의 모듈들이 함께 협력하는 것이다. 이들이 연합하거나 합병하여 새로운 생물, 자연 선택에 의해 작용하고  작용받는 전혀 새로운 복합체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찰스 다윈도 잘 인식하고 있었듯이 자연 선택만으로는 어떤 진화적 혁신도 창출할 수 없다. 오히려 자연 선택은 생존이나 생식능력이 부족한 놈들을 추려냄으로써 이전의 개량된 형질과 새로 만들어진 신종을 부단히 유지시킨다. 가능한 한 많은 자손을 남기려는 생물의 잠재려근 살아 남은 놈들이 소중히 돌보게 마련이다. 그러나 최초의 새로운 형질은 어딘가에서부터 발생해야만 한다. 시너지 효과로 보자면 별개의 두 형태가 협력작용을 하여 놀라운 제3의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 <생명이란 무엇인가> 중 -


 이 부분을 읽으며 우리가 기존에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편합한 논리로만 생명의 진화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양한 생물들의 시너지라는 장에서 보다 복잡미묘한 작용을 거쳐 생물의 진화가 창발하는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생명에 대해 무척 다양한 시선과 사색의 거리를 매우 따뜻한 과학으로, 냉철한 문학으로 제공한다. 아마도 내 최고 애정하는 도서목록에 들어가지 않을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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