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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극권 수련을 하는 사람들 중에 매우 큰 망상 중 하나가 바로 발경이다. 무협만화를 보면 기를 모아 한번에 발력하면서 초필살기를 쓰는 캐릭터들이 더러 나온다. 하지만 이 멋진 광경은 만화속에서나 유효한 것이다. 실제 격투에서는 일단 기를 모으다가 흠씬 두드려 맞을 것이고, 운 좋게 상대방이 기를 모을 동안 때리지 않고 기다려주더라도?! 애써 힘을 모아 초필살기를 날렸는데 안맞으면 그만인 것이다.
  즉 발경이란 '힘의 크기'를 키운다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힘을 컨트롤' 하여 영활하고 재빠르게 힘을 활용하는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사실상 몸무게가 60kg에 육박하는 포유류인 인간은 누구할것 없이 힘이 세다.특별히 근골의 힘을 키우지 않더라도 60kg이 넘는 성체가 그 무게만 잘 실어 정타를 날려도 그 힘은 상대를 파괴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물론 만화처럼 나무나 건물을 파괴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세가지이다.

첫째, 무게를 온전히 실어 칠 수 있는가.
둘째, 무게를 온전히 실었다해도 상대에게 유효타를 날릴 수 있는가.
셋째, 내 몸의 타격부위가 그 힘을 버틸 것인가.


 오히려 힘의 크기를 키우는 것보다 이 세가지가 더 어려운 일이다. 첫번째의 경우 예를 들어 근육이 정말 많은 헬스트레이너가 있다고치자. 하지만 그 헬스트레이너에게 샌드백을 쳐보라하면 그 사람의 비주얼에 비해 의외로 힘이 잘 안 날 것이다. 그 이유인즉, 몸이 충분히 이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근육을 키우는 일은 이완도 중요하지만 수축에 무게를 실어 훈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수축에만 신경 쓸 경우 힘을 내보내기 힘들어진다. 내가 가진 힘을 내보내는 일은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데, 일단 힘을 내는 순간에는 온 뭄이 수축한다. 그리고 거의 그와 동시에 몸을 최대한 이완해야 한다. 또한 타격이 되는 순간에는 몸이 수축이라긴 애매하지만 경질화 혹은 완충되며 내 몸을 보호해야한다.
 흔히 기술을 다루는 장인들이 '다 요령이여' '힘빼고 쳐야해' 라 말하는 것이 바로 위의 섬세한 과정인 것이다. 힘빼고 치라고 해서 진짜 힘빼고 치면 아무 힘이 안난다. 그렇다고 힘을 꽉 주면 그 또한 힘이 안난다. 즉, 힘을 줌과 동시에 힘이 빠지고 타격의 순간에는 타격하는 물체에 힘이 침투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발경이다. 발경은 근육의 이완과 수축, 맺고 끊음을 매우 섬세하게 컨트롤 하는 것이다.

 두번째의 경우 아까 처음에서 설명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투로를 통해 발경을 완성시켰다치자. 투로만 보면 정말 절세고수가 따로 없다. 하지만 요즘 흔히 보듯 '격투기 선수VS중국무술 고수'의 경기에서 중국무술 고수가 맥없이 패배하는 영상이 바로 중국무술 고수의 경우 이 두번째가 훈련되지 않아서 그렇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샌드백을 활용하든 전통적인 투로를 활용하든 근골의 힘을 키우게 되면 힘은 커지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렇게 키운 힘을 비정형성을 가진 날렵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방어하며 심지어는 매몰차게 공격을 해오는 상대방에 유효타를 날리는 것은 굉장히 많은 훈련과 전략이 필요하다. 즉 힘을 키우는 것보다 몸을 영활하게 가지면서 치고 빠지며 적절한 '타이밍'에 유효타를 날리는 훈련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이뤄지기 위해서 역시 몸의 이완이 중요한 것이다. 몸이 충분히 이완되어 있어야 다변적 상황에 대처하는 영활하고 날렵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세번째의 경우 앞의 두가지를 성공시켰다 하더라도 상대를 때렸는데 내 주먹이나 발꿈치가 부서져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격투를 목적으로 수련을 한다면 어느정도 내 몸의 타격부위를 경질화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전문적인 격투기 선수의 경우 근골의 단단함, 힘의 크기, 섬세한 컨트롤 모두 다 치열하게 키워야한다. 왜냐하면 격투기로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야 상대를 이길까 말까이다.
 하지만 내 몸의 건신을 돕고 호신하기 위한 수준의 무술수련이라면 힘의 크기를 키우는 것에 너무 치중하기 보다는 힘을 섬세하게 컨트롤 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해야한다. 발경은 힘의 크기를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만화적인 상상력에서는 벗어나길 바란다.

 

 

 

 나는 요즘 가야금을 다루는 것에 푹 빠져있다. 헌데 가야금을 다루는 일은 만만치 않다. 매우 섬세하고 엄격하게 선율을 맞춰하지 않으면 선생님으로부터 불호령이 떨어지기 일쑤이다. 왜냐하면 조금이라도 박자와 음정이 틀어지면 음악 자체를 망쳐버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가야금을 배우며 나의 태극권을 수련했던 지난 날을 반성해보았다. 나는 투로를 행공할 때 이렇게 악기를 다루듯 엄격하였는가? 나는 나의 몸을 다룰 때 이 악기를 다루듯 정성껏 다뤘는가... 절대 그렇지 않았다. 자주 투로의 운행과 무게중심의 이동을 허투루 하였었고, 요결을 지키지 않고 딴 생각에 빠져있을 때도 많았다. 또한 진도를 빨리 나가고 싶은 욕심에 몸이 축나는지도 모르고 마구 파괴적인 에너지를 발산하며 다급하게 행공하였던 적도 많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한 때 왜 그렇게 태극권을 하면 무릎이 아팠었는지, 태극권을 배우는데도 심기가 불안정한지... 그 원인을 가야금을 다루며 알 수 있었다. 즉 정성과 집중력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악기는 조금만 틀려도 티가 나기 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질래야 흐트러질 수도 없다. 그랬다간 나한테도 들키고 남한테도 들켜버린다. 하지만 태극권은 조금 안일하게 하여도 티가 잘 안난다. 아니, 당장에는 티가 잘 안나지만 결국 몸의 부작용으로 크게 탈이 나버린다. 

 태극권을 수련할 때도, 나의 몸을 관리할 때도 바로 이 악기 다루듯 움직임 하나 하나 정성을 다하는 것, 이것이 매우 중요한 요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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