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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불이는 금나라의 도사이다. 중국에서의 도가사상의 발전에 있어 신기한 점은 도가 혹은 도술은 대게 '위진 남북조' '송' '금' '청' 등 전통적인 한족이 아닌 북방계 유목민족이 중흥하던 시대에 발달하게 된다. 교과서적인 설명으로는 그 당시가 중국이 어지러웠던 시대인만큼 개개인의 내적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였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한족 중심적인 역사서술일뿐, 북방계 유목민족의 입장에서는 어느때보다 풍요로운 전성기였을 것이다. '중국'은 사실 특정한 정체성이 없다. 북방계 유목민, 중부의 한족, 남부의 여러 쌀문화권 민족들이 서로 역동적으로 의사소통 하였던 역사가 바로 '중국'이다. 그렇게 다양한 민족들의 역동적인 의사소통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하고 풍부한 문화를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족주의적 사관을 가진 사람들은 중국의 도가사상은 한민족 혹은 북방계 유목민족들의 선도사상과 관련이 많을 것으로 추측한다. 손불이가 금나라(여진) 사람이라는 것에 대해 이정도로 각설하고...(여튼 중국사에서 손불이는 한족처럼 다뤄진다.) 손불이 자신이 여성이며, <여단법> 역시 여성을 위한 단법 서적이다. 내단법이란 무릇 인체에 대한 섬세한 공부가 있어야 하는데, 여성은 남성과 엄연히 생리적 차원에서 다르다. 그런데 여성을 위한 내단법을 다룬 서적이 없다는데 저자는 이 책의 서술동기를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여단법>의 우수한 점은 몇 가지 점(여성의 월경, 유방 등)에 대한 남성과 상이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남성들이 내단법을 이해하는데도 많은 도움이 되도록 잘 서술하였다는 것이다. 흔히 중국의 대표적인 도술서적으로 <주역참동계>를 꼽지만 주여참동계는 너무 많은 비유와 수사로 그 핵심을 직시하기 너무 어렵다. 하지만 <여단법>은 비유와 설명도 매우 간결하게 잘 하였고,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하고 있다.

 특히 첫장의 '심인경'이 매우 인상깊으며 다음과 같다.


 귀중한 약 세 가지는 신(神)과 기(氣)와 정(精)이다. 황홀하고 그윽한 가운데 무(無)에서 보존하고 유(有)를 지키면 순식간에 이루어지고 바람을 돌이켜 혼합하면 백일공부가 신령스러워져서 조용히하느님을 조회하고 일기(一紀) 만에 날아오르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쉽게 깨닫고 어두운 사람은 행하기가 어려우리라.

하늘의 광휘를 밟고 호흡으로 청정함을 기르며
현빈(玄牝)*으로 출입시켜 있는 듯 없는 듯
실처럼 끊어지지 않게 하면
꼭지는 굳어지고 뿌리는 깊어지리라.

사람에게는 각기 정이 있으니
정을 그 신에 합하고
신을 그 기에 합하고
기는 그 참됨에 합해야 하는데
그 참된 것을 얻지 못하고 모두 억지로 이름한 것이라.**

신은 바위에도 들어갈 수 있고
신은 형체를 날게 할 수도 있으며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고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는 것인데
신은 형체에 의지하여 살고
정은 기에 의지하여 가득하게 된다.***

시들지도 않고 쇠약해지지도 않게 하면
소나무나 잣나무와 같이 푸르리니
세 가지는 하나의 이치이고 그 묘한 것은 들을 수가 없는데
그것을 모으면 있고 그것을 흩으면 없어지게 된다.****

일곱 개의 규(竅)*****가 서로 통하면
규마다 밝게 빛나고 성스러운 해와 성스러운 달이
금정(金庭)을 환히 비치리니
나를 얻으면 영생을 얻게 되어 자연히 몸이 가벼워지리라.

정기가 넘쳐흐르면
뼈에 흩어져서 찬 구슬이 되며
단(丹)을 얻으면 신령스러워지고
얻지 못하면 위태로워지는데
단은 몸 가운데 있어서 희지도 푸르지도 않는 것이라.

-만 번을 읽으면 신묘한 이치가 자연히 밝혀지리라.-



*회음부, 호흡이 회음부로 드나드는 느낌을 갖는다.
**보통 '연정화기-연기화신-연신환원'을 이야기 하지만 기를 그 참됨(원)에 합하는 것으로 설명하기도한다. '참됨' 이란 지극히 고요한 우주만물의 영원불멸성이다.
*** 신이 지닌 무한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신의 절대적 우월성이 아닌 '정,기,신'의 상호보완적인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서로의 존재성을 유지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특히 다른 문화권의 수행법과 차별화된 '도가적 시각' 이기도하다.
**** 단전의 존재에 대한 설명이다. 단전은 잘 배양하는 이에게는 확실한 존재이나, 그것을 흩어지게 한 이에게는 없는 것과 같다.
***** 눈, 코, 입 일곱개의 구멍



우리나라의 내단법도, 중국의 내단법도 결국 정도(正道)를 걷는 올바른 수련이라면 수련의 상승경지에서 얻어지는 '지극히 고요한 상태'를 가장 귀하게 여긴다. 이는 현대의 명상수련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수련을 하며 이런저런 요상한 기의 감각과 환상적인 환영들, 전생이나 미래를 점치는 행위, 귀신과 만나 이야기하는 것들, 혹은 모든 것은 공허하다는 삿된 생각들... 이러한 것들에 빠지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이다.
 그런 것들이 실제로 존재하느냐, 아니냐를 논쟁할 필요가 없다. 단지 명상을 통한 수행은 그 '지극히 고요함' '깨어있음'을 얻는 것이 가장 귀한 것이다. 손불이의 <여단법> 역시 이를 강조하고 있다.



 조선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절망과 탄식으로 가득하던 때 허준은 선조의 명을 받아 '동의보감'을 집성하게 된다. 동의보감의 완성은 정유재란이 끝난 광해 때 이뤄진다.
 
 동의보감은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일단 국민의 건강과 보건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제작한 민간의료서적이라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또한 동의보감의 우수한 점은 당대의 다양한 의학, 선가, 민간요법을 매우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였음에도 내용이 어렵지 않게 정리되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동의보감에 인용된 상당수의 서적들이 '도가, 선가' 계열의 책이라는 것이다. 조선은 성리학 혹은 유교국가로써 불교나 도가를 배격하였다고 알기 쉬우나 여전히 민간의 몸과 우주에 대한 의식을 지배하는 세계관은 다분히 도가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은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으로 나뉜다. '내경편'에서는 '정,기,신'에 대한 매우 체계적인 설명이 이뤄지고, 혈과 오장육부를 다룬다. 이를 읽으며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인체의 내부를 이루는 이들 각각의 요소들이 상당히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시스템을 형성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해부생리학과는 다른 의미로 매우 치밀하고 나름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도가계열의 신선술에서 고대로부터 다뤄지는 개념과 내용들이 상당하다.

동의보감에서 '정,기,신'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구선에 이르기를, '정'은 몸의 근본이 되고 '기'는 '신'의 주인이 되며, '형'은 '신'의 집이 된다. 그래서 '신'을 너무 많이 쓰면 정식을 하게 되고 '정'도 또한 과히 쓰면 마르게 되며, '기'도 크게 노하게 되면 끊어지게 되며, 형체의 의탁은 기가 됨으로써 기도 쇠하게 되면 형이 모손하게 된다. 그렇기 때무네 장생할 수 가 없는 것이다. 모든 '있음'은 '없음'에서부터 생기게 되고, '형태'란 '신'의 집이 된다. 안전한 집을 마련하지 않고 편안하게 수신과 양신을 하려고 하니 결국 기는 흩어지게 되고 공허로 돌아가게 되니, 혼이 놀라서 변태되는 것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촛불을 쓰게 되면 초가 모두 타서 불이 꺼지게 되는 것이며 제방이 무너지게 되면 물도 흩어지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혼은 양이 되고 백은 음이 되니, 신은 기가 아주 맑으면 신도 또한 상쾌하게 되고, 형도 힘을 많이 쓰면 기가 탁하게 되는 것이다. 기를 복하는 사람은 천백이 모두 죽게 되니 형체가 땅에 떨어지게 된다.
 사람이 죽게 되면 혼백이 하늘과 땅에 갈라지고 물과 불로 분사해서 각각 본 곳으로 돌아가게 되니, 살아서 한몸인데 죽으면 서로 떨어져 흩어지고 잠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가 된다. 여기에 비유해서 나무의 뿌리 하나를 불태워보면 그 연기는 위로 오르고 재는 밑에 흩어져 잠기는 것도 또한 자연의 이치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신명은 생화의 근본이 되고, 정기는 만물의 몸체로써 그 형태를 제대로 한다면 살게 되고 또 정기를 기른다면 생명은 길어지게 된다.

 또한 '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동원에 이르기를, 기는 신의 조상이요, 정은 기의 아들이 되니 기란 정신의 근체가 된다.


 여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정,기,신'을 상호보완적 관계로 보았다는 것이다. 보통 서양의 이원론적 세계에서는 '영혼'이 본질이고 '육체'는 단지 계속 변화하고 소멸하는 담지자의 역할 밖에 안한다. 즉, 영혼과 육체에 일종의 상하관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서는 '정,기,신' 은 서로가 서로를 이루어 형성되는 것이다. '영혼' 이나 '혼백' 이나 '신'이 존재의 본질이고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라 '정,기,신' 자체가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며 끊임없이 순환하고 변화하며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다.
 하여 형체와 정기를 잘 붙들면 '신'이 달아나지 않아 육체가 장생할 수도 있다는 인식도 나타나며, 이것이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신선사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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