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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절망과 탄식으로 가득하던 때 허준은 선조의 명을 받아 '동의보감'을 집성하게 된다. 동의보감의 완성은 정유재란이 끝난 광해 때 이뤄진다.
 
 동의보감은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일단 국민의 건강과 보건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정책적으로 제작한 민간의료서적이라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또한 동의보감의 우수한 점은 당대의 다양한 의학, 선가, 민간요법을 매우 체계적으로 집대성하였음에도 내용이 어렵지 않게 정리되었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의 또 다른 흥미로운 점은 동의보감에 인용된 상당수의 서적들이 '도가, 선가' 계열의 책이라는 것이다. 조선은 성리학 혹은 유교국가로써 불교나 도가를 배격하였다고 알기 쉬우나 여전히 민간의 몸과 우주에 대한 의식을 지배하는 세계관은 다분히 도가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동의보감은 '내경편' '외형편' '잡병편'으로 나뉜다. '내경편'에서는 '정,기,신'에 대한 매우 체계적인 설명이 이뤄지고, 혈과 오장육부를 다룬다. 이를 읽으며 매우 흥미로운 점은 인체의 내부를 이루는 이들 각각의 요소들이 상당히 체계적이고 유기적인 시스템을 형성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해부생리학과는 다른 의미로 매우 치밀하고 나름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도가계열의 신선술에서 고대로부터 다뤄지는 개념과 내용들이 상당하다.

동의보감에서 '정,기,신'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구선에 이르기를, '정'은 몸의 근본이 되고 '기'는 '신'의 주인이 되며, '형'은 '신'의 집이 된다. 그래서 '신'을 너무 많이 쓰면 정식을 하게 되고 '정'도 또한 과히 쓰면 마르게 되며, '기'도 크게 노하게 되면 끊어지게 되며, 형체의 의탁은 기가 됨으로써 기도 쇠하게 되면 형이 모손하게 된다. 그렇기 때무네 장생할 수 가 없는 것이다. 모든 '있음'은 '없음'에서부터 생기게 되고, '형태'란 '신'의 집이 된다. 안전한 집을 마련하지 않고 편안하게 수신과 양신을 하려고 하니 결국 기는 흩어지게 되고 공허로 돌아가게 되니, 혼이 놀라서 변태되는 것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촛불을 쓰게 되면 초가 모두 타서 불이 꺼지게 되는 것이며 제방이 무너지게 되면 물도 흩어지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혼은 양이 되고 백은 음이 되니, 신은 기가 아주 맑으면 신도 또한 상쾌하게 되고, 형도 힘을 많이 쓰면 기가 탁하게 되는 것이다. 기를 복하는 사람은 천백이 모두 죽게 되니 형체가 땅에 떨어지게 된다.
 사람이 죽게 되면 혼백이 하늘과 땅에 갈라지고 물과 불로 분사해서 각각 본 곳으로 돌아가게 되니, 살아서 한몸인데 죽으면 서로 떨어져 흩어지고 잠기는 것은 자연의 이치가 된다. 여기에 비유해서 나무의 뿌리 하나를 불태워보면 그 연기는 위로 오르고 재는 밑에 흩어져 잠기는 것도 또한 자연의 이치와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신명은 생화의 근본이 되고, 정기는 만물의 몸체로써 그 형태를 제대로 한다면 살게 되고 또 정기를 기른다면 생명은 길어지게 된다.

 또한 '기'에 대해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동원에 이르기를, 기는 신의 조상이요, 정은 기의 아들이 되니 기란 정신의 근체가 된다.


 여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은 '정,기,신'을 상호보완적 관계로 보았다는 것이다. 보통 서양의 이원론적 세계에서는 '영혼'이 본질이고 '육체'는 단지 계속 변화하고 소멸하는 담지자의 역할 밖에 안한다. 즉, 영혼과 육체에 일종의 상하관계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동의보감에서는 '정,기,신' 은 서로가 서로를 이루어 형성되는 것이다. '영혼' 이나 '혼백' 이나 '신'이 존재의 본질이고 영원불멸한 것이 아니라 '정,기,신' 자체가 하나의 하모니를 이루며 끊임없이 순환하고 변화하며 더불어 존재하는 것이다.
 하여 형체와 정기를 잘 붙들면 '신'이 달아나지 않아 육체가 장생할 수도 있다는 인식도 나타나며, 이것이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신선사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단전을 이야기 하기가 매우 난감한 이유는 분명 수련을 하는 사람에게는 단전자리가 느껴지는데, 일반인들에게는 느껴지지도 않고 또한 해부생리학적 기관(Organ)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수련을 하는 사람들의 주관적 착각에 의해 만들어진 난해하고 몽매한 환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경험적으로 검증되지 않는 것을 잘 안 믿는 성향이 있다. 그래서 처음 태극권 수련을 접할 때 내적 갈등이 있었다. 태극권의 특유의 몸짓과 그것이 내포한 도가철학의 매력 때문에 태극권을 수련하였지만 '기'니 '단전'이니 '소주천' 따위의 말들을 잘 믿지 않았었다. 왜냐하면 초심자였던 나에게 그런 감각들이 느껴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련이 무르익어감에 따라 몸의 열감이나, 자기장 혹은 물줄기 같은 기감이 느껴지기도 하고, 단전의 느낌이 확연해지면서 다시금 내적 갈등이 시작되었었다. 분명 내 주관적 감각으로는 느껴지지만 이것을 경험적, 과학적으로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왜 그런 갈등을 하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인체란 질량을 가진 에너지 덩어리이다. 또한 인체는 끊임없이 순환하며 창조와 파괴의 재생산이 이뤄진다.  자연히 중력, 전자기장, 혈압, 근육 등 다양한 에너지와 물리적 흐름으로 가득하다. 수련이란 이러한 에너지의 흐름을 섬세하게 자각하고, 이를 컨트롤 해가는 과정이다. 마치 비가 내리면 하천이 생기고, 바람에는  지형의 특성을 반영한 방향이 있으며, 사람이 다니는 길에는 도로가 나듯 인체도 특정한 운동방향에 따라 에너지의 일관된 흐름이 생긴다. 그것을 경락이라고 하는 것이다.

 마치 하천과 하천이 모여 저수지가 되고 바다가 되듯, 도로와 도로가 모여 결절지가 되고 도시가 생기듯, 인체의 에너지도 들고 나는 곳이 집중되는 지역이 생기는데 이를 단전이라 하는 것이다. 대게 인체의 물리적 에너지가 집중되는 곳이 하단전, 인체의 순환적 에너지가 집중되는 곳이 중단전, 인체의 정신적 에너지가 집중되는 곳이 상단전이다.

 하단전이 위치한 곳 주변에는 허벅지, 고관절, 생식기, 창자가 있다. 이들은 근력의 형성, 소화와 배설, 생식 등 인체의 물리적 영역을 담당한다.
 중단전이 위치한 곳 주변에는 심폐와 간위가 집중하여 인체의 순환적 영역을 담당한다.
 상단전이 위치한 곳 주변에는 뇌와 눈이 집중하여 인체의ㅣ 정신적 영역을 담당한다.

 단전은 '에너지 감각'이다. 에너지의 형태와 역할에 따라 그것이 집중되는 곳이 있기 마련이고, 그 부분을 '감각' 하는 것이다. 단전을 인체의 기관이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생각이다. 단전은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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