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ument.onkeypress = getKey;


 불교사상을 공부함에 있어 가장 큰 오해와 망상에 빠지는 부분이 바로 '공(空)' '무상(無想)' '무아(無我)' 에 대한 것이다. 사실은 '없다' 가 아니라 '아니다' 라고 표기해야 올바른 설명이 되는 부분인데 '없다'라고 표기해버리니 모든 것이 없고 공허하다라는 허무주의에 빠지게 만든다.

 정확한 이해는 '색성향미촉법'과 '오온(법수상행식)'은 진짜 나가 '아니다' 라는 표현이 옳다. 이 설명이 석연치 않게 느껴진다면 두 눈 똑바로 뜨고 대표적인 불경 몇가지를 제대로 읽어보길 바란다. 어느 불경에서도 부처님은 이 세상은 아무것도 없다는 허무주의를 설파하지 않았다. 다만 오온이 내가 아니고, 색성향미촉법이 내가 아니고, 형상이 내가 아니라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아님을 깨달을 때 바로 '그 자리'의 실체를 파악한다면 허망하지 않고 열반을 얻을 수 있다한 것이다.

 부처님은 '실존'과 '열반'을 적극 옹호한 분이다. 다만 이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은 최소화하였다. 그렇지만 존재의 실존을 직관하는 깨어었음, 고통이 소멸된 열반의 상태를 옹호하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 세상은 '아무 것도 없다' 라고 해석했다는 오해를 산 것일까?

 대승불교는 많은 부분에서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지만, 대중을 설득하고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언어적 장치가 필요하였다. 이는 기독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독교 역시 글조자도 모르는 대중들에게 진리를 이해시키기 위해 많은 서사적 장치를 추가한 것이다. 하지만 대중들은 이 '장치'들을 직설적으로 믿어버렸다. 심지어 이 장치들에 집착하여 본말전도가 되어버리는 상황까지 치닫는다.

 불교를 공부함에 있어 가장 유의하여야 하는 부분이 바로 이 '아무 것도 없다'는 공사상에 대한 삿된 견해이다. 불교를 공부하며 허망함을 느낀다면 이는 매우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고통이 소멸된 상태, 그 여여한 침묵의 상태에서부터 행복한 삶을,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라는 것이 진정한 불교의 메세지이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