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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마도 절간에서 어마어마한 돈들여 제사 지내고, 자식들 취업이며 입시 잘 되게 해달라 비는 오늘날의 풍경을 부처님이 봤으면 탄식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이야말로 시대의 고루하고 부폐한 형식과 틀에 맞서 싸운 혁명가이자 반항아였기 때문이다. 아래 숫따니빠따 5장을 보자!


뿐나까의 질문

 뿐나까가 말했다. "욕망에서 벗어난 분, 근본을 꿰뚫어 보는 분께 여쭙고자 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많은 선인들, 평민, 왕족, 그리고 브라흐민들이 신들께 제사를 지냅니까? 존귀하신 분이여, 당신께 여쭈오니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뿐나까여, 이 세상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많은 선인들, 평민, 왕족, 그리고 브라흐민들은 늙어감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존재를 (다시) 갈망하기 때문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뿐나까가 말했다. "거룩하신 분이여, 이 세상에서 신ㄷ르에게 제사를 지낸 이들 많은 선인들, 평민, 왕족 그리고 브라흐민들이 제사 지내는 것에 게을지 않았다ㅕㄴ, 태어남과 늙음의 그 너머로 간 것입니까, 존자님? 존귀하신 분이여, 제가 여쭈오니 그것을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뿐나까여, 그들은 바라고, 찬양하고, 가망하고 제물을 바칩니다. 그들은 이득 때문에 감각적 쾌락을 갈망합니다. 제사에 헌신하고, 존재에 대한 욕망에 집착한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을 초월하지 못했다고 나는 말합니다."

뿐나까가 말했다. "만일 제사에 헌신하는 자들이 제사에 의해서도 태어남과 늙음을 초월하지 못했다면, 그러면 존자님, 누가 신과 인간의 세상에서 태어남과 늙음을 초월했습니까? 존귀하신 분이여, 당신께 여쭈오니 그것을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뿐나까여, 세상에서 높고 낮은 모든 것들을 살피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동요가 없고, 고요하고, (욕망의) 연기를 (피움) 없이, 고뇌 없이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면, 그는 태어남과 늙음을 초월했다고 나는 말합니다."


* 뿐나까의 질문을 통해 부처님은 당대에 성횡하던 브라흐만 계급 사제들의 제사풍습에 대해 비판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말로 열반을 외치지만, 결국 온갓 제사와 신에게 자신의 욕망을 빌고 갈구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열반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진정한 브라흐만은 출신성분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 하였던 것이다. 욕망을 여흰 청정한 자리,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자리가 진정한 진리의 열반이거늘, 이 당시에 누구나 신을 향해 자신의 욕망을 갈망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모습을 보라! 오늘날 불교를 포함한 종교와 명상수행자들의 모습을 보라! 이 당시 부폐한 브라흐만 사제들과 무엇이 다른가? 불교는 온갓 제사와 소원성취기도로 장사를 해먹고, 기독교는 도저히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었다. 또한 명상수련자들은 끌어당김의 법칙이니 이런 요상한 이론들에 빠져 겉으론 우아한척 하지만 '멘탈산업'으로 밥벌이 하기에 급급하다.
 아마도 새 시대의 미륵불이 나온다면 지금의 현실을 엄격히 비판하는 인물일 것이다.



멧따구의 질문

멧따구가 말했다. "존귀하신 분이여, 여쭈오니 이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는 최상의 지혜를 얻은 분이고, 마음 수행을 잘하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다양한 형태로 있는 이런 괴로움들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멧따구여, 그대는 나에게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 물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대에게 말하리라. 이 세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있는 괴로움은 집착을 원인으로 일어납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집착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풀이하여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이 태어남과 괴로움의 근원인 줄을 알고서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우리가 여쭌 것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다른 것을 여쭈오니 이것을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지혜로운 살마은 (윤회의) 홍수를 건넙니까? 어떻게 태어남과 늙음, 그리고 슬픔과 한탄을 건넙닊? 성자여, 이것을 저에게 잘 설명해 주십시오. 이처럼 참으로 당신은 이 가르침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멧따구여, 이 세사아 현상에서 전해 들은 것이 아닌 가르침을 그대에게 말하겠소. ( 이 가르침으르) 이해하고서 마음을 집중하고 유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집착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위대한 선인이여, (이 가르침을) 이해하고서 마음을 집중하고 유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집착을 뛰어넘으리라는 최상의 가르침에 저는 기쁩니다."

 "멧따구여, 위로 아래로, 옆으로, 또한 가운데로, 그대가 아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것들에 대한 환락과, 집착과, 식별을 몰아내고서 이생에서의 존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부지런히 마음을 집중하고 이처럼 머무는 비구는, 좋아하는 것들을 버리고, 태어남과 늙음, 슬픔과 한탄을 버리고, 현자로서 이 세상에서 괴로움을 벗어날 것입니다."

 "위대한 선인의 말씀에 저는 기쁩니다. 고따마시여, 집착에서 벗어난 경지가 잘 설명되었습니다. 진실로 존귀한 분은 괴로움을 버리셨습니다. 이처럼 당신은 이 가르침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성자시여, 당신께서 계속해서 가르치는 그들도 또한 이제 괴로움을 버릴 것입니다. 코끼리시여, 당신께 나아가 절합니다. 확실히 거룩하신 분은 저를 계속해서 가르치실 것입니다."

 "최사아의 지혜를 얻은 자라고 (그대들이) 인정하는 아라한, 그는 소유가 없고, 감각적 쾌락과 존재에 집착하지 않고, 분명히 홍수를 건넜고, 피안에 이르렀고, 황무지가 없고, 의혹이 없소.

 그는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이고, 최상의 앎을 얻은 자이고, 어떤 형태의 존재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갈애가 없고, 고뇌에서 벗어나고, 욕망이 없고, 태어남과 늙음을 건넜다고 나는 말합니다."


* 위 글에서 보듯이 부처님의 본래적인 가르침은 매우 단순하다. 즉 무수한 별리의 상태를 면치 못하는 육신과 오온, 감각작용은 진리가 아니니 이것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집중하여 진정한 진리를 얻으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이외에 없다.
 부처님은 스스로 이 이외에 더 이상 의견을 덧붙히지 않았다. 그저 이 이외에는 진리라 믿는 의식 마저도 진리가 아니니 그 마저도 뗏목을 건너듯 버리라 한 것과, 오직 스스로를 등불삼아 가고, 방일치말고 정진하라 하였다. 그 외에 부처님은 더 하신 말씀이 없다.
 그런데 후대의 불학자와 불교에 대한 미신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불교의 교리는 포장에 포장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부처님은 절대 알 수 없는 사실에 대해 뭉뚱그려 사견을 덧붙여 믿음을 강조하지 않았다. 단지 확실한 진리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을 뿐이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현상계를 통해 알 수 있는 진리는 이것뿐이다. '육신과 오온, 감각작용은 계속  변화한다.' 그렇다면 변치 않는 영원불멸한 진리는 무엇일까? 인간은 왜 괴로운 것일까? 이것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집중하라.' 이것뿐이다.
 아! 얼마나 단순한 말씀인가! 부처님의 말씀은 단순하다. 하지만 그 실천과 지속이 힘들 뿐이다. 그래서 '방일치 말고 정진하여라' 한 말씀 하셨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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