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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안학교에서 근무하며 공부를 강요함으로써 부작용이 생겼던 많은 학생과 이 학생들이 과거의 상처를 딛고 개선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공부하지 않으려는 학생들의 공통점이 있는데 이는 우문현답으로 들릴지 모르나 '공부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너무 뻔한 대답인가? 아니다. 공부를 싫어한다는 것을 진단했다면 그 이후의 행동을 어떻게 해야할까? 진짜 큰 문제는 공부를 싫어하는데 공부를 강요함으로써 생긴다. 공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만 잔뜩 키워주기 때문에 결국 공부를 못하는 것은 물론 인격적인 면에서부터 큰 문제를 초래할 수도 있게 된다. 공부를 싫어하는 학생들에게는 어떻게 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이 역시 너무 당연하게도 공부의 재미있는 면을 '느끼게' 해줌으로써 공부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전환시켜주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인데 특히 부모들은 이 이치를 무시한다. 왜냐하면 자녀에 대한 '욕심' 때문이다. 욕심이 있으면 지혜롭기라도 하면 좋으련만, 욕심만 채우려 계속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결국 파국만 있을 뿐이다.

 내가 대안학교에서 교사생활을 하며 학교에 들어올때만 하더라도 공부라면 치를 떨던 아이들이 1,2년 뒤엔 점차 공부를 하겠다는 각오와 마음을 내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보았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대안학교에 근무한 많은 교사들은 동일한 경험을 했을 것이다. 대안학교에서의 생활을 통해 공부에 대한 인식이 전환되는 이유는 일단 시험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남들과 비교도 평가도 하지 않고, 시험을 위해 억지로 공부할 필요도 없다. 공부에 대한 일제의 강요를 내려놓음으로써 아이들은 개선된다.
 또한 공부에 대한 강요를 내려놓는 것만이 이런 혁명적인 변화의 이유는 아니다. 공부가 싫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주어야 할 것은 억지로 공부시키는 것이 아닌 본인들이 본보기를 보임으로써 지속적으로 '영감'을 주는 것이다. 아이들은 훌륭하고 멋진 주변어른들의 행동과 실천을 통해 영감과 감동을 느끼며 커간다. 본인도 못하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최악의 행동이다. 아이에게 공부를 하도록 하고 싶으면, 스스로 공부하는 멋진 어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지속적인 영감을 주어야한다.
 앞의 두가지가 이뤄지면 다음으로 진행할 것은 넓은 세상과 다양하고 깊은 삶의 경험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아이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지 않고, 공부의 필요성을 깨우쳐주지 않은채 공부를 시키려해봤자 어떤 동기유발도 일어날 수 없다. 스스로 삶의 경험을 통해 공부의 필요성과 동기를 찾도록 도와야한다.

 이 모든 것을 충족했을때 비로소 호랑이 같이 무섭고 훌륭한 큰 스승을 모셔 아주 치열하고 치밀한 공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 공부를 할 필요성을 느끼도록 돕는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심지어 공부에 대한 강요로 인해 큰 마음의 상처를 입은 아이는 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혹여 다른 아이들은 저렇게 훌륭한데, 내 아이는 왜 이럴까? 이런 푸념이나 늘어놓고 있지 않은가? 나도 다른 부모 못지 않게 많은 것을 퍼다주었는데 애가 왜 이럴까? 그것은 아이에게 정작 필요한 '영감'과 '사랑'은 주지 않은채 엉뚱한 것만 잔뜩 퍼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려고만 했지, 진정으로 아이와 소통하고 공감하지 않은 것이다. 이 말이 피상적으로 들릴지 모르나 난 대안학교 교사로서 경험을 통해 확신해서 하는 말이다. 심지어 부모도 아닌 내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다가서고 사랑을 줄 때 아이들은 변화하였다. 하물며 부모가 아이에게 그런 것을 주었다면 그 아이는 엄청 더 큰 성장을 했을 것이다. 다만 부모가 그 이치를 깨우치지 못했을 뿐이다.

 남의 아이가 훌륭하고 부럽다고 푸념하지만, 사실 그 부모는 아이에게 참으로 적절하고 정확한 교육적 영감과 사랑을 아이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시간 바른 정성을 들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모든 것이 정확한 인과관계에 의해 흐른다. 아이에게서 문제가 드러난다면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고 욕심많은 삶을 살아왔는지 돌아봐야한다. 불교의 말처럼 탐하고, 분노하고, 어리석은 것에 의해 인간은 고통받는다. 또한 이 탐진치에 의해 아이들의 맑은 영혼은 다치는 것이다. 부모가 본인의 탐진치를 내려놓고 깨우침을 얻을 때 아이 또한 혁명적으로 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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