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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대안학교에서 9년째 복무하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나의 교사로써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고 되물었었다. 어떤 선생님이 훌륭한 선생님인가? 뭍사람들로부터 스승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가? 입시위주의 오늘날의 교육현실에서는 이에 대해 답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아마도 요즘 가장 각광받는 선생님의 유형은 인정사정 볼것 없이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주는 선생님들일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아이들이 줄어 학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실정이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공부시키고 입학성적이 좋은 학교들은 서로 다퉈 입학하려고만 한다. 그럼에도 시대를 막론하고 참스승의 본질은 변치 않으리라 믿는다. 또한 아이들의 공부를 체계적으로 시켜주고 지속할 수 있도록 코칭해주어 좋은 입학성적을 내주는 선생님 역시 그 정도의 열정을 보이기 위해서는 참스승으로써의 자질이 충분하리라. 그러니 이들의 가치관은 어찌보면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교사의 첫번째 자질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은 인류의 모든 가치관에 선행하는 것이다. 인류가 이뤄놓은 지식, 도덕률... 이 모든 것 앞에 우선하는 가치관은 바로 인류애, 즉 사랑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유대관계에 대한 믿음, 하나같이 저마다 샛별 같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 인간 존재에 대한 원초적 믿음이 없는 자는 절대 스승일 수 없다. 스승은 인간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서로를 이끌어주는 존재이다. 그런데 인류에 대한 사랑 없이, 학생에 대한 끈끈한 유대관계가 없이 어떻게 스승일 수 있겠는가!

 좋은 교사의 두번째 자질은 끊임없이 공부하려는 열정이다. 이는 가르치는 기술보다 중요하다. 교사 스스로 자신이 사랑하고 열망하는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정진하는 자세가 있어야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끈을 놓는 순간 그는 교사이길 포기한 사람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공부시킬지에 대한 방법론적 고민에 얽매여있는 사람은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가장 뛰어난 스승은 스스로 공부하며 학생보다 몇걸음 앞에서 항상 함께 걸어가는 이다.

 좋은 교사의 세번째 자질은 뛰어남이다. 교사는 우수해야한다. 평생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공부해왔다면 적어도 학생들보다 지적, 인성적,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뒤떨어질 일이 없다. 진정한 선생은 학생보다 무조건 지적으로 뛰어나고, 많은 시간을 공부하며,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야한다.( 학부모의 주머니에 경제생활을 온전히 의존하는 교사는 진짜 교사가 아니다. 사실 보모이다...) 애초에 학생보다 뒤떨어지면 그것이 학생이지 선생은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학생보다 월등히 우수한 면모를 보여줘야 학생들이 동경하고 따른다. 학생들보다 멋도 배포도, 주머니사정도 여의치 않은 교사, 지적으로 인성적으로 매력없는 스승을 과연 누가 따를까... 교사는 뭍사람들보다 뛰어난 멋쟁이여야한다. 범접하지 못할 전공분야에 대한 광휘와 풍격이 있어야한다.

 훌륭한 교사의 네번째 자질은 가르치려는 열정이다. 앞의 세가지를 충족시키고도 가르치려는 열정이 빠져있으면 이는 연구원이거나, 기술자이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는 없다. 교사는 뭍사람들 앞에서길 좋아하고, 자신이 배운 것들을 주저리 주저리 떠들며 나눠주길 좋아하는 수다쟁이여야한다. 내가 열정적으로 배우고 연구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나누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이것을 재미있는 놀이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교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모든 면을 충족시킨 다음에야 다섯번째 자질로 말빨이 좋고, 사교성이 좋은 연예인 자질이다. 그런데 요즘은 몇몇 교사들은 이것이 지나쳐 연예인 신드롬에 걸렸는지... 이것을 가장 우선시하여 아이들에게 인기와 이벤트와 말빨로 겉멋만 가르치려 드는 교사들이 종종 있다. 재미있고 비권위적이면 물론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교사에게서는 아이들이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 단지 무료한 학교생활에 노리개일 뿐이다. 혹여 자신이 아이들로부터의 인기와 학부모로부터의 칭찬에 도취되어 있다면 경각심을 일깨우길 바린다. 하지만 앞의 네가지 자질을 충분히 충족한 사람이라면 이 다섯번째 자질을 갖출 경우 완벽히 훌륭한 스승일 수 있다. 아무리 교육방법론이 다양해졌다지만 여전히 가장 훌륭한 교육법은 교사의 재치넘치는 입담과 수업을 이끌어가는 연기력에 있다. 이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기술로써 매우 중요하다. 기실 성경이나 불경을 보라. 분명 예수님과 부처님, 그리고 공자는 상당히 말빨이 뛰어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들 경전에 그렇게 수려한 묘사와 문장이 있을 수가 없다. 교사는 뛰어난 입담꾼이자 연기자이다.

 물론 교사가 이 다섯가지를 다 충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앞의 두가지는 교사로써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며, 세번째 조건은 훌륭한 스승으로 진입하는 관문이고, 네번째 조건은 직업을 교사로 갖기 위해서는 필수조건이다.또한 다섯가지를 갖춘다면 아마도 전국적으로 많은 학생들을 키워내는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학업성취에 있어서는 타고난 지성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끈기있게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집중력이 중요하다. 몇몇 정말 뛰어난 극소수의 영재들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지적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 교육활동을 하며 학생들을 만나다보면 분명 학업성취능력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지만, 생활에서 마주치는 모습들을 볼 때는 굉장히 지적능력도 뛰어나고 세밀한 관찰력과 번뜩이는 영재성이 넘쳐나는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이 결국 자기 능력을 키우지 못해 빛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한 가지 목적에 몰입하는 집중력의 부족에 있다.

 

 그렇다면 집중력 부족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정서적 문제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학업성취가 높은 친구들을 관찰해보면 주요한 특징이 있는데 대부분 가정적 환경이 매우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가정의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이에 따르는 부모님의 정서적 온화함, 안정적인 부부관계, 자녀에 대한 세심한 배려와 소통, 이런 것들이 하나의 가풍을 만들어 그러한 정서적 안정 속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주로 학업성취가 높다. 여러분의 어린시절을 회상해보라. 집에서 부모님은 매일 부부싸움을 하고, 일 하느라 힘들고 날카로운 모습으로 신경질을 부리고, 자녀의 장래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줄 여유도 안목도 없다... 이런 환경에서 굴하지 않고 자신을 다독여 나가며 학업에 매진하는 소수의 친구들도 있지만 다수의 친구들은 매일 불안하고 흔들리느라 학업에 매진할 여유가 없다. 

 

 학생들에게 공부하라고 강요만 해서는 절대 공부를 잘 할 수 없다. 학업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이에 대한 정서적 기반이 풍요로워야 한다. 정서적 결핍감이 충분히 충족되었을 때 자신의 장래에 대한 올바른 고민과 이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다. 칭기스칸의 어린 시절처럼, 혹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멋지게 성공한 몇몇 연예인들의 경우를 들어 이에 대해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극소수의 경우이다. 다수의 눈에 띄지 않게 성공한 사람들은 가정의 안정적인 기반이 있어 성장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매우 바쁘고 정신없는 현대사회에서 부족한 두 사람이 만나 부부생활을 하는 것도, 아이를 키우는 것도 무엇 하나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은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렇다고 실패한 그들의 부부관계와 아이 키우기, 그리고 가정경영에 대해 질책받는 것이 마땅한 일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누구나 실수를 할수도 있고, 돌이킬 수 없는 후회스런 일을 할 수도 있다. 그 자체에 절망하고 당신의 아이가 이렇게 커버린 것은 모두 당신 부모들 탓이야! 라고 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시행착오를 겪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개선하려 노력하지 않는다면 이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현장에 있다보면 학생이 문제행동을 보이는 것에 대처하는 두 부류의 부모님이 있다. 학생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돌아보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이다. 학생의 문제행동에 대해 가정사적 문제와 자신이 하였던 실수를 빠르게 인정하고 학생을 함께 도우려는 선생님들과 적극적으로 변화를 모색하려는 부모님은 매우 훌륭한 경우이다. 이런 경우 학생의 변화는 매우 빨리 찾아온다. 무엇보다 성장과정에서 정서적으로 결핍되었던 부분을 세밀히 관찰하며 그 부분을 충족시켜주면 되는 생각보다 매우 쉬운 일이다. 부모님의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자녀에 대한 진솔한 애정을 보여주며 학생의 주변에 훌륭한 멘토가 함께 한다면 한 사람의 비뚤어졌던 마음은 금방 제 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이다.

 

 하지만 부모가 자신의 과오를 끝끝내 인정하지 못하고, 학생의 문제행동을 학교와 사회와 선생님과 주변 학우들로부터 찾으려들면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자신은 항상 옳았고 학생이 운이 없어 친구를 잘못 만나고, 선생님을 잘못 만난 것이며 아이는 아무 문제 없는데 학교문화가 잘못된 것이다.' 학생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부모들과 상담을 하여보면 항상 이런 뉘앙스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되면 학생이 정서적으로 어떤 결핍감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지 진단이 어렵고, 진단이 된다 하더라도 부모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기 쉽지 않다. 

 

 학업성취를 위해서는 학생의 정서적 결핍을 충족시켜주는 작업이 우선시 되어야한다. 정서적으로 충만한 아이는 자신의 장래에 대해 생각할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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