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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번 '송과(고관절의 이완)'의 중요성을 다룬바 있다. 하지만 무릎통증이란 태극권을 수련하는 사람에게 있어 매우 심각하면서도 잘 찾아오는 부작용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릎을 중심으로 한번 더 다뤄보고자한다.

 무릎통증이 생기는 원인은 결론적으로는 쉽게 말해 무릎에 힘을 주기 때문이다. 무릎에 힘을 주는 원인은 다양하다. 전사를 잘못 이해하여 무릎을 돌려버린다든가, 미려를 너무 심하게 감아서 무릎인대에 힘을 준다던가, 몸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려 무릎에 무게가 실린다던가, 몸의 요결을 갖추지 않고 무작정 자세를 낮춰 무릎에 힘이 들어간다던가, 진도를 빨리 나가고 싶어 태극권을 조바심을 가지고 빨리 한다던가 심지어는 수련전에 몸을 충분히 풀어주지 않아 인대가 뻣뻣하다던가... 여하튼 태극권을 열심히 수련하는 사람들은 대게 위의 경우를 겪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위의 모든 것은 잘못된 것이다. 위의 모든 행위들은 무릎에 힘을 준다. 무릎이 아픈 이유는 관절이 비틀린다던가, 무릎인대에 힘이 들어가는 두가지 이유밖에 없다. 왜냐하면 무릎이라는 기관 자체가 관절, 연골, 인대로만 이루어져있기 때문이다. 관절이 비틀려 연골이 달아버린다든지, 인대에 무리한 힘이 들어가서 무리를 할 경우 무릎이 아픈 것이다. 무릎에는 근육이 없다. 한마디로 무릎은 힘을 쓰는 기관이 아니며 무릎에 힘이 들어가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동작인 것이다.

 그렇다면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해야 하는가? 일단 가장 중요한 것은 고관절을 이완하는 것이다. 고관절이 충분히 이완하면 자세를 낮추거나 높히거나, 전사를 하며 척추를 회전하더라도 그 모든 동작이 고관절의 운동 범위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무릎에 힘이 전달되거나 돌아가는 일이 없다. 무릎 이하의 하체는 단단한 나무의 뿌리처럼 박혀있을 뿐이다. 수련전에는 필히 고관절을 충분히 풀어주는 체조와 스트레칭을 해주어야한다.

 또한 상체의 이완된 힘은 무릎이 아닌 허벅지에 실려야한다. 윗허벅지와 단전에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 '미려중정'을 하는 것이다. 꼬리뼈를 늘쿠거나 살짝 감으면 힘의 중심이 윗허벅지와 단전에 실린다. 하지만 이 경우 매우 조심해야 하는 것이 있다. 꼬리뼈를 너무 심각하게 말아버리면 오히려 고관절과 무릎인대가 경직된다. 꼬리뼈를 감을 때는 나의 고관절과 무릎인대가 충분히 부드럽게 이완되어 있는지 동시에 살펴야한다.

 무릎에 힘이 들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또한 가장 중요하며 기초적인 것이 몸의 무게중심이 앞으로 쏠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보통 무릎이 발가락끝을 넘어서면 안된다는 말이 이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발바닥에 무게가 실리는 비율을 잘 살펴야하는데 태극권에서는 발바닥 전체에 무게가 고르게 실리고, 발가락은 움켜쥔듯 하여 용천이 텅 빈 느낌이 들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무게중심을 너무 뒤로 빼면 몸이 뒤로 넘어가고 너무 앞으로 실어면 무릎에 힘이 들어간다. 그 묘한 중심을 맞추는 것은 결국 개개인이 수련을 하며 몸을 섬세하게 관찰하여 그 중심을 잡는 것 뿐이다.

 무릎에 힘이 안들어가는 네번째 요령은 전사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이다. 전사경은 힘을 집약시키는 것이다. 절대 몸을 출렁출렁 돌리는 것이 아니다. 송이 몸의 힘을 해방하는 요령이라면, 전사는 몸을 수축하고 통합하는 요령이다. 몸을 수축하고 통합하는데 몸이 출렁거릴 이유가 없다. 특히 무협영화에서 태극권을 묘사할 때 몸이 출렁출렁 회전을 하는데 이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전사경이 무르익을수록 몸은 오히려 매우 단순해보인다. 실제로 노사님들의 태극권시연모습을 보면 거의 외적으로는 전사경이 느껴지지 않는데 이는 그분들께서 연세가 있어 몸이 둔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효과적으로 전사가 작아진 것이다.  진정한 전사경은 전사경 같아 보이지 않는다.

 무릎통증을 예방하는 다섯번째 요령은 이완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 흔히 무극장을 할 때 몸을 이완하라하면 힘을  빼며 하체를 우그러뜨린다. 몸이 이완하면 침(가라앉는 힘)력이 강해진다. 그래서 몸이 묵직해져 단단히 뿌리박힌 나무 같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엄연히 말하면 힘을 빼어 몸이 우그러지는 것이 아니라 사방팔방으로 몸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래야 침력과 동시에 몸이 영활해져서 가라앉음과 동시에 날렵한 동작이 가능해진다. 여하튼 몸을 우그러뜨리면 무릎과 관절에 무리만 줄 뿐이다.

 다시 결론을 말하자면 무릎통증이 일아나는 이유는 무릎에 힘을 주기 때문이다. 어떤 동작을 하더라도 무릎에 힘이 들어가면 안되기에 투로를 할 때는 필히 무릎을 살펴 힘이 들어가는지 섬세하게 관찰해야한다.


 태극권 수련을 하는 사람들 중에 매우 큰 망상 중 하나가 바로 발경이다. 무협만화를 보면 기를 모아 한번에 발력하면서 초필살기를 쓰는 캐릭터들이 더러 나온다. 하지만 이 멋진 광경은 만화속에서나 유효한 것이다. 실제 격투에서는 일단 기를 모으다가 흠씬 두드려 맞을 것이고, 운 좋게 상대방이 기를 모을 동안 때리지 않고 기다려주더라도?! 애써 힘을 모아 초필살기를 날렸는데 안맞으면 그만인 것이다.
  즉 발경이란 '힘의 크기'를 키운다는 개념이라기 보다는 '힘을 컨트롤' 하여 영활하고 재빠르게 힘을 활용하는 개념에 가까운 것이다.

 사실상 몸무게가 60kg에 육박하는 포유류인 인간은 누구할것 없이 힘이 세다.특별히 근골의 힘을 키우지 않더라도 60kg이 넘는 성체가 그 무게만 잘 실어 정타를 날려도 그 힘은 상대를 파괴시키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물론 만화처럼 나무나 건물을 파괴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중요한 문제는 세가지이다.

첫째, 무게를 온전히 실어 칠 수 있는가.
둘째, 무게를 온전히 실었다해도 상대에게 유효타를 날릴 수 있는가.
셋째, 내 몸의 타격부위가 그 힘을 버틸 것인가.


 오히려 힘의 크기를 키우는 것보다 이 세가지가 더 어려운 일이다. 첫번째의 경우 예를 들어 근육이 정말 많은 헬스트레이너가 있다고치자. 하지만 그 헬스트레이너에게 샌드백을 쳐보라하면 그 사람의 비주얼에 비해 의외로 힘이 잘 안 날 것이다. 그 이유인즉, 몸이 충분히 이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근육을 키우는 일은 이완도 중요하지만 수축에 무게를 실어 훈련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수축에만 신경 쓸 경우 힘을 내보내기 힘들어진다. 내가 가진 힘을 내보내는 일은 굉장히 섬세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치는데, 일단 힘을 내는 순간에는 온 뭄이 수축한다. 그리고 거의 그와 동시에 몸을 최대한 이완해야 한다. 또한 타격이 되는 순간에는 몸이 수축이라긴 애매하지만 경질화 혹은 완충되며 내 몸을 보호해야한다.
 흔히 기술을 다루는 장인들이 '다 요령이여' '힘빼고 쳐야해' 라 말하는 것이 바로 위의 섬세한 과정인 것이다. 힘빼고 치라고 해서 진짜 힘빼고 치면 아무 힘이 안난다. 그렇다고 힘을 꽉 주면 그 또한 힘이 안난다. 즉, 힘을 줌과 동시에 힘이 빠지고 타격의 순간에는 타격하는 물체에 힘이 침투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발경이다. 발경은 근육의 이완과 수축, 맺고 끊음을 매우 섬세하게 컨트롤 하는 것이다.

 두번째의 경우 아까 처음에서 설명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투로를 통해 발경을 완성시켰다치자. 투로만 보면 정말 절세고수가 따로 없다. 하지만 요즘 흔히 보듯 '격투기 선수VS중국무술 고수'의 경기에서 중국무술 고수가 맥없이 패배하는 영상이 바로 중국무술 고수의 경우 이 두번째가 훈련되지 않아서 그렇다. 웨이트 트레이닝과 샌드백을 활용하든 전통적인 투로를 활용하든 근골의 힘을 키우게 되면 힘은 커지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렇게 키운 힘을 비정형성을 가진 날렵하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방어하며 심지어는 매몰차게 공격을 해오는 상대방에 유효타를 날리는 것은 굉장히 많은 훈련과 전략이 필요하다. 즉 힘을 키우는 것보다 몸을 영활하게 가지면서 치고 빠지며 적절한 '타이밍'에 유효타를 날리는 훈련이 매우 중요하며, 이것이 이뤄지기 위해서 역시 몸의 이완이 중요한 것이다. 몸이 충분히 이완되어 있어야 다변적 상황에 대처하는 영활하고 날렵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세번째의 경우 앞의 두가지를 성공시켰다 하더라도 상대를 때렸는데 내 주먹이나 발꿈치가 부서져 버리면 아무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격투를 목적으로 수련을 한다면 어느정도 내 몸의 타격부위를 경질화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전문적인 격투기 선수의 경우 근골의 단단함, 힘의 크기, 섬세한 컨트롤 모두 다 치열하게 키워야한다. 왜냐하면 격투기로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해야 상대를 이길까 말까이다.
 하지만 내 몸의 건신을 돕고 호신하기 위한 수준의 무술수련이라면 힘의 크기를 키우는 것에 너무 치중하기 보다는 힘을 섬세하게 컨트롤 하는 것을 매우 중요시해야한다. 발경은 힘의 크기를 키우기 위한 것이라는 만화적인 상상력에서는 벗어나길 바란다.

 

 숫따니빠따 혹은 숫타니파타라고도 하는 이 경전은 사십대가 채 되지 않은 깨달음 직후 인도 전역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초기 부처님의 순박한 말씀이 그대로 남아있는 경전이다. 우리나라에서 유명한 '금강경' 이나 '반야심경' '천수경'은 사실상 상당히 각색의 과정을 거친 불경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숫따니빠따는 부처님께서 살아 생전 당시의 시대의 역사적 풍경을 고스란히 알 수 있는 역사서이기도 하다.

 숫따니빠따의 가장 유명한 구절은 '코뿔소 뿔의 경'의 아래 구절이다.

 

소리에 놀리자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나라에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라는 말로 초기에 번역되었지만, 무소라기 보다는 고고하고 당당한 풍채의 외뿔을 가진 코뿔소가 정확하다.

 시적으로도 매우 우수한 이 구절의 전체를 읽어본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코뿔소 뿔의 경은 깨달음을 향한 수행자의 확고하고 강인한 용맹함을 옅볼 수 있는 경이다. 어찌보면 다소 냉정하고 인간미가 떨어져 보일 수 있지만 이 정도의 확고함조차 없이 모든 고통을 여흰 열반을 얻을 수 있으랴. 물론 부처는 깨달음 이후에 여든이 넘는 노구가 될 때까지 이 경의 구절처럼 냉정하게 살지 않았다. 늘 수많은 제자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고, 부처 자신은 아무런 물질적 집착에도 구애받지 않았지만 부처가 가는 곳이면 각 왕국의 가장 부유한 사람들의 근사한 대접을 받으며 살았다.

 아마도 이 경에서 말하는 냉정함과 확고함은 삶의 형태라기 보다는 수행자의 마음가짐을 묘사한 듯 하다. 코뿔소 뿔의 경을 전체적으로 읽어보자.

 

 

모든 살아 있는 존재에 대한 폭력을 내려놓고,

그들 중에서 어느 하나도 해치지 않고,

자식도 바라지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교제하는 사람에게는 애정이 생긴다.

애정을 따라서 괴로움이 생긴다.

애정에서 일어난 위험을 보고서,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친구들과 동료들과 동정심으로

마음이 묶여서 목표를 읽게 된다.

친교의 이 두려움을 보고서,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식과 아내에 대한 기대는 

넓게 가지를 뻗은 대나무가 얽힌 것과 같다.

대나무 순이 서로 들러붙지 않듯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숲에서 먹이를 찾아,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가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자유를 찾아,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료들 사이에서 머물거나,

서 있거나, 가거나, 유행하면 요구가 있게 된다.

탐내지 않는 자유를 찾아,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동료들 사이에서 오락과 즐거움이 있고

자식들에 대한 커다란 애정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이 싫다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사방에 속해 있는 그는

증오 없이 무엇이든지 만족하고,

두려움 없이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어떤 출가자들은 만족하기가 어렵다.

또한 집에 사는 재가자들도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들의 자식들에 관심 두지 말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잎이 떨어진 꼬빌라라 나무처럼

재가자의 특성들을 떨쳐 버리고,

영웅은 재가자의 속박들을 끊고서,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만일 확고하고 선한 삶을 사는 지혜로운 친구를 얻는다면,

모든 위험을 극복하고 기쁘게 

깨어 있는 마음으로 그와 함께 가라.

 

만일 확고하고 선한 삶을 사는

지혜로운 친구를 얻지 못한다면,

정복한 왕국을 버리는 왕처럼,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우리는 참으로 친구를 얻은 행운을 기린다.

자기보다 낫거나 동등한 친구와 가까이 사귀어야 한다.

그런 친구를 만나지 못하면 허물없이 살며,

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금 세공사에 의해 잘 만들어진

빛나는 황금의 (팔찌) 두 개가,

(한) 팔에서 함께 부딪치는 것을 보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처럼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잔소리와 말다툼이 일어나리라.

장차 이 두려움을 보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참으로 감각적 쾌락들은 

다양하고, 달콤하고, 즐거워서

그들의 여러 가지 모습으로 마음을 휘젓는다.

감각적 쾌락의 가닥들에게서 위험을 보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이 나에게 재앙이고, 종기이고,

불행이고, 질병이고, 화살이고, 공포이다.

감각적 쾌락의 가닥들에서 이런 위험을 보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추위와 더위, 굶주림과 목마름,

바람과 (태양의) 열기, 쇠파리와 뱀들,

이 모든 것들을 이겨 내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점이 있고 웅장하고,

거대한 몸통을 가진 코끼리가

무리를 떠나 숲에서 좋아하는 대로 사는 것처럼,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교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일시적인 해탈을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

태양의 후예의 말씀을 명심하여,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잘못된 견해의 왜곡을 벗어나,

길을 얻어서, 해탈의 길에 도달하였다.

'나에게 지혜가 생겼다.

 다른 사람에 의해 이끌릴 필요가 없다.' 고 생각하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 없이, 속임 없이, 갈애 없이, 거짓 없이,

더러움과 어리석음을 날려 버리고

온 세상에 대한 집착 없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유익함을 보지 못하고

나쁜 행동에 빠져 버린 악한 친구를 멀리하라.

그릇된 견해에 빠진 자, 태만한 자를 가까이 하지 말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널리 배워 가르침을 마음으로 아는

고매하고 지혜로운 친구를 사귀어라.

유익한 (길을) 알고 의심을 버리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에서 감각적 쾌락에서 오는 행복에도,

유희와 오락에도 만족하지 않고,

관심 두지 않고, 꾸밈을 삼가고, 진실을 말하면서,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식과 아내, 아버지와 어머니,

재물과 곡식, 친척들

그리고 감각적 쾌락의 한계가지 모두 버리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것을 집착이다. 여기에는 행복도 적고 만족도 적다.

여기에는 괴로움은 더 많다.

이것은 낚시바늘이라고 알고서 지혜로운 이는,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물고기가 그물을 찟는 것처럼,

불이 (이미) 다 타 버린 곳으로 되돌아가지 않는 것처럼,

속박들을 부수어 버리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눈을 아래로 뜨고 주의 깊게 걷고,

감각기관을 지키고, 마음을 집중하고,

(번뇌가) 새지도 않고 불타지도 않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재가자의 특성들을 버리고

잎이 떨어진 빠리찻따 나무처럼,

출가하여 가사를 입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맛에 탐닉하지 않고, 산만하지 않고, 부양할 사람 없이,

(빈부를 가리지 않고) 차례로 탁발하고,

이집 저집에 마음이 묶이지 않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마음의 다섯 가지 장애를 버리고,

모든 더러움을 몰아내고, 의존하지 않고,

사랑과 미움을 끊어 버리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전의 행복도 괴로움도 버리고,

환희와 슬픔도 버리고,

순수하고 고요한 평정을 얻고서,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최상의 진리를 얻기 위해,

단호하고 활기찬 마음으로, 게으럼 없이,

확고한 노력으로, 강한 힘을 갖추어,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한적함과 명상을 버리지 않고,

모든 일에 항상 담마에 따라서 살고,

존재들에서 비참함을 알고서,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갈애의 소멸을 열망하고,

깨어 있고, 총명하고, 배우고, 마음을 집중하고,

가르침을 이해하고, 확신을 갖고, 넘치는 힘으로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물에 더렵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모든 동물을 제압하고,

짐승들의 왕으로 승리하여 걸어가는,

강한 이빨을 가진 사자처럼 한적한 거처로 가야 한다.

(이처럼)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자애, 평정, 자비, 해탈, 

기쁨을 때맞추어 닦고,

온 세상에 의해 방해받지 않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버리고,

속박을 부수고, 

목숨이 흩어질 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작의 이익을 위해 사귀고 의지한다.

오늘날 동기 없는 친구들은 보기 드물다.

자기의 이익에 밝은 자는 순수하지 못하니,

코뿔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과학과 종교는 모두 나름의 방식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훌륭한 인류의 문화유신이지만 때로는 이와 같은 인식의 오류 때문에 편협한 길을 걷게 된다.

 "과학은 검증할 수 없는 것을 부정해버리고, 종교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단정지어버리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과학이 가장 가장 파워풀한 논리는 바로 '증명과 검증'이다. 과학의 이론은 모두 검증되지 않으면 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인류의 문화유산보다 신뢰가 간다. 하지만 과학의 근본이 된 경험주의 철학은 본래 검증할 수 없는 것들에는 '침묵'하는 것이지 결코 '부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침묵과 부정이란 정말 큰 차이가 있다. 침묵한다는 것은 아직 알 수 없는 신비로움에 대한 존중이다. 다만 아직 검증할 수 없기에 판단을 중지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증할 수 없는 신비를 부정해버리면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편협한 생각의 감옥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이 정말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알 수 없는 신비에 침묵하여야한다. 하지만 절대 이를 부정하여서는 안된다.

 과학과 반대로 종교는 검증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지나치게 단정지어 버린다. 신, 하나님, 온갓 신비로운 우주의 법칙과 초능력.... 이런 것들에 대해 너무 쉽게 그 존재를 단정해버리고 우상을 만들어 버린다. 이는 자칫 매우 우매한 길로 빠질 수 있는 것이다. 평생에 걸쳐 믿어온 것이 어느 누군가의 뇌속에서 일어난 망상이었다고 생각해보라... 정말 비참할 것이다. 그런데 종교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 쉽게 허용되고 있다. 종교적 설화와 교리들의 상당수가 검증할 수 없는 무언가를 카리스마적 교주들에 의해 단정지어져 버리고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무리들에 의해 믿어져버린다.
 
 결국 종교와 과학 모두 검증할 수 없는 신비에 대해서는 침묵해야한다. 단정도 긍정도 부정도 아닌 침묵, 오로지 이 침묵만이 진리에 이르는 가장 신중한 자세이다.


 아마도 절간에서 어마어마한 돈들여 제사 지내고, 자식들 취업이며 입시 잘 되게 해달라 비는 오늘날의 풍경을 부처님이 봤으면 탄식을 금치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이야말로 시대의 고루하고 부폐한 형식과 틀에 맞서 싸운 혁명가이자 반항아였기 때문이다. 아래 숫따니빠따 5장을 보자!


뿐나까의 질문

 뿐나까가 말했다. "욕망에서 벗어난 분, 근본을 꿰뚫어 보는 분께 여쭙고자 왔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 때문에 많은 선인들, 평민, 왕족, 그리고 브라흐민들이 신들께 제사를 지냅니까? 존귀하신 분이여, 당신께 여쭈오니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뿐나까여, 이 세상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많은 선인들, 평민, 왕족, 그리고 브라흐민들은 늙어감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존재를 (다시) 갈망하기 때문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뿐나까가 말했다. "거룩하신 분이여, 이 세상에서 신ㄷ르에게 제사를 지낸 이들 많은 선인들, 평민, 왕족 그리고 브라흐민들이 제사 지내는 것에 게을지 않았다ㅕㄴ, 태어남과 늙음의 그 너머로 간 것입니까, 존자님? 존귀하신 분이여, 제가 여쭈오니 그것을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뿐나까여, 그들은 바라고, 찬양하고, 가망하고 제물을 바칩니다. 그들은 이득 때문에 감각적 쾌락을 갈망합니다. 제사에 헌신하고, 존재에 대한 욕망에 집착한 그들은 태어남과 늙음을 초월하지 못했다고 나는 말합니다."

뿐나까가 말했다. "만일 제사에 헌신하는 자들이 제사에 의해서도 태어남과 늙음을 초월하지 못했다면, 그러면 존자님, 누가 신과 인간의 세상에서 태어남과 늙음을 초월했습니까? 존귀하신 분이여, 당신께 여쭈오니 그것을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뿐나까여, 세상에서 높고 낮은 모든 것들을 살피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동요가 없고, 고요하고, (욕망의) 연기를 (피움) 없이, 고뇌 없이 어떤 것도 바라지 않는다면, 그는 태어남과 늙음을 초월했다고 나는 말합니다."


* 뿐나까의 질문을 통해 부처님은 당대에 성횡하던 브라흐만 계급 사제들의 제사풍습에 대해 비판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말로 열반을 외치지만, 결국 온갓 제사와 신에게 자신의 욕망을 빌고 갈구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열반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진정한 브라흐만은 출신성분이 아니라 행위에 의해 결정된다 하였던 것이다. 욕망을 여흰 청정한 자리, 마음을 집중한 고요한 자리가 진정한 진리의 열반이거늘, 이 당시에 누구나 신을 향해 자신의 욕망을 갈망할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의 모습을 보라! 오늘날 불교를 포함한 종교와 명상수행자들의 모습을 보라! 이 당시 부폐한 브라흐만 사제들과 무엇이 다른가? 불교는 온갓 제사와 소원성취기도로 장사를 해먹고, 기독교는 도저히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세계적인 대기업이 되었다. 또한 명상수련자들은 끌어당김의 법칙이니 이런 요상한 이론들에 빠져 겉으론 우아한척 하지만 '멘탈산업'으로 밥벌이 하기에 급급하다.
 아마도 새 시대의 미륵불이 나온다면 지금의 현실을 엄격히 비판하는 인물일 것이다.



멧따구의 질문

멧따구가 말했다. "존귀하신 분이여, 여쭈오니 이것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대는 최상의 지혜를 얻은 분이고, 마음 수행을 잘하신 분이라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다양한 형태로 있는 이런 괴로움들이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멧따구여, 그대는 나에게 괴로움의 근원에 대해 물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대에게 말하리라. 이 세상에서 다양한 형태로 있는 괴로움은 집착을 원인으로 일어납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집착을 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되풀이하여 괴로움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이것이 태어남과 괴로움의 근원인 줄을 알고서 집착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신은 우리가 여쭌 것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다른 것을 여쭈오니 이것을 부디 말씀해 주십시오. 어떻게 지혜로운 살마은 (윤회의) 홍수를 건넙니까? 어떻게 태어남과 늙음, 그리고 슬픔과 한탄을 건넙닊? 성자여, 이것을 저에게 잘 설명해 주십시오. 이처럼 참으로 당신은 이 가르침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멧따구여, 이 세사아 현상에서 전해 들은 것이 아닌 가르침을 그대에게 말하겠소. ( 이 가르침으르) 이해하고서 마음을 집중하고 유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집착을 뛰어넘을 것입니다."

 "위대한 선인이여, (이 가르침을) 이해하고서 마음을 집중하고 유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집착을 뛰어넘으리라는 최상의 가르침에 저는 기쁩니다."

 "멧따구여, 위로 아래로, 옆으로, 또한 가운데로, 그대가 아는 것은 무엇이든지, 이것들에 대한 환락과, 집착과, 식별을 몰아내고서 이생에서의 존재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부지런히 마음을 집중하고 이처럼 머무는 비구는, 좋아하는 것들을 버리고, 태어남과 늙음, 슬픔과 한탄을 버리고, 현자로서 이 세상에서 괴로움을 벗어날 것입니다."

 "위대한 선인의 말씀에 저는 기쁩니다. 고따마시여, 집착에서 벗어난 경지가 잘 설명되었습니다. 진실로 존귀한 분은 괴로움을 버리셨습니다. 이처럼 당신은 이 가르침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성자시여, 당신께서 계속해서 가르치는 그들도 또한 이제 괴로움을 버릴 것입니다. 코끼리시여, 당신께 나아가 절합니다. 확실히 거룩하신 분은 저를 계속해서 가르치실 것입니다."

 "최사아의 지혜를 얻은 자라고 (그대들이) 인정하는 아라한, 그는 소유가 없고, 감각적 쾌락과 존재에 집착하지 않고, 분명히 홍수를 건넜고, 피안에 이르렀고, 황무지가 없고, 의혹이 없소.

 그는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자이고, 최상의 앎을 얻은 자이고, 어떤 형태의 존재에 대한 집착도 버리고, 갈애가 없고, 고뇌에서 벗어나고, 욕망이 없고, 태어남과 늙음을 건넜다고 나는 말합니다."


* 위 글에서 보듯이 부처님의 본래적인 가르침은 매우 단순하다. 즉 무수한 별리의 상태를 면치 못하는 육신과 오온, 감각작용은 진리가 아니니 이것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을 집중하여 진정한 진리를 얻으라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 이외에 없다.
 부처님은 스스로 이 이외에 더 이상 의견을 덧붙히지 않았다. 그저 이 이외에는 진리라 믿는 의식 마저도 진리가 아니니 그 마저도 뗏목을 건너듯 버리라 한 것과, 오직 스스로를 등불삼아 가고, 방일치말고 정진하라 하였다. 그 외에 부처님은 더 하신 말씀이 없다.
 그런데 후대의 불학자와 불교에 대한 미신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불교의 교리는 포장에 포장을 거듭하게 된 것이다.
 부처님은 절대 알 수 없는 사실에 대해 뭉뚱그려 사견을 덧붙여 믿음을 강조하지 않았다. 단지 확실한 진리에 대해서만 말씀하셨을 뿐이다. 우리가 이 지구상에서 현상계를 통해 알 수 있는 진리는 이것뿐이다. '육신과 오온, 감각작용은 계속  변화한다.' 그렇다면 변치 않는 영원불멸한 진리는 무엇일까? 인간은 왜 괴로운 것일까? 이것에 대한 부처님의 대답은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집중하라.' 이것뿐이다.
 아! 얼마나 단순한 말씀인가! 부처님의 말씀은 단순하다. 하지만 그 실천과 지속이 힘들 뿐이다. 그래서 '방일치 말고 정진하여라' 한 말씀 하셨던 것이다.


 나는 대안학교에서 9년째 복무하고 있으면서 끊임없이 나의 교사로써의 능력과 자질을 의심하고 되물었었다. 어떤 선생님이 훌륭한 선생님인가? 뭍사람들로부터 스승으로 불릴 자격이 있는가? 입시위주의 오늘날의 교육현실에서는 이에 대해 답하기가 정말 쉽지 않다. 아마도 요즘 가장 각광받는 선생님의 유형은 인정사정 볼것 없이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켜주는 선생님들일 것이다. 실제로 요즘은 아이들이 줄어 학교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실정이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을 체계적으로 공부시키고 입학성적이 좋은 학교들은 서로 다퉈 입학하려고만 한다. 그럼에도 시대를 막론하고 참스승의 본질은 변치 않으리라 믿는다. 또한 아이들의 공부를 체계적으로 시켜주고 지속할 수 있도록 코칭해주어 좋은 입학성적을 내주는 선생님 역시 그 정도의 열정을 보이기 위해서는 참스승으로써의 자질이 충분하리라. 그러니 이들의 가치관은 어찌보면 상충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교사의 첫번째 자질은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다. 이것은 인류의 모든 가치관에 선행하는 것이다. 인류가 이뤄놓은 지식, 도덕률... 이 모든 것 앞에 우선하는 가치관은 바로 인류애, 즉 사랑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유대관계에 대한 믿음, 하나같이 저마다 샛별 같은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에 대한 근원적인 믿음, 인간 존재에 대한 원초적 믿음이 없는 자는 절대 스승일 수 없다. 스승은 인간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믿고 서로를 이끌어주는 존재이다. 그런데 인류에 대한 사랑 없이, 학생에 대한 끈끈한 유대관계가 없이 어떻게 스승일 수 있겠는가!

 좋은 교사의 두번째 자질은 끊임없이 공부하려는 열정이다. 이는 가르치는 기술보다 중요하다. 교사 스스로 자신이 사랑하고 열망하는 분야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정진하는 자세가 있어야한다. 스스로 공부하는 끈을 놓는 순간 그는 교사이길 포기한 사람이다. 아이들을 어떻게 공부시킬지에 대한 방법론적 고민에 얽매여있는 사람은 진정한 스승이 아니다. 가장 뛰어난 스승은 스스로 공부하며 학생보다 몇걸음 앞에서 항상 함께 걸어가는 이다.

 좋은 교사의 세번째 자질은 뛰어남이다. 교사는 우수해야한다. 평생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공부해왔다면 적어도 학생들보다 지적, 인성적,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뒤떨어질 일이 없다. 진정한 선생은 학생보다 무조건 지적으로 뛰어나고, 많은 시간을 공부하며, 경제적으로도 풍요로워야한다.( 학부모의 주머니에 경제생활을 온전히 의존하는 교사는 진짜 교사가 아니다. 사실 보모이다...) 애초에 학생보다 뒤떨어지면 그것이 학생이지 선생은 아니지 않은가! 무엇보다 학생보다 월등히 우수한 면모를 보여줘야 학생들이 동경하고 따른다. 학생들보다 멋도 배포도, 주머니사정도 여의치 않은 교사, 지적으로 인성적으로 매력없는 스승을 과연 누가 따를까... 교사는 뭍사람들보다 뛰어난 멋쟁이여야한다. 범접하지 못할 전공분야에 대한 광휘와 풍격이 있어야한다.

 훌륭한 교사의 네번째 자질은 가르치려는 열정이다. 앞의 세가지를 충족시키고도 가르치려는 열정이 빠져있으면 이는 연구원이거나, 기술자이지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수는 없다. 교사는 뭍사람들 앞에서길 좋아하고, 자신이 배운 것들을 주저리 주저리 떠들며 나눠주길 좋아하는 수다쟁이여야한다. 내가 열정적으로 배우고 연구한 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고 나누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이것을 재미있는 놀이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교사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 모든 면을 충족시킨 다음에야 다섯번째 자질로 말빨이 좋고, 사교성이 좋은 연예인 자질이다. 그런데 요즘은 몇몇 교사들은 이것이 지나쳐 연예인 신드롬에 걸렸는지... 이것을 가장 우선시하여 아이들에게 인기와 이벤트와 말빨로 겉멋만 가르치려 드는 교사들이 종종 있다. 재미있고 비권위적이면 물론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교사에게서는 아이들이 배울 것이 하나도 없다. 단지 무료한 학교생활에 노리개일 뿐이다. 혹여 자신이 아이들로부터의 인기와 학부모로부터의 칭찬에 도취되어 있다면 경각심을 일깨우길 바린다. 하지만 앞의 네가지 자질을 충분히 충족한 사람이라면 이 다섯번째 자질을 갖출 경우 완벽히 훌륭한 스승일 수 있다. 아무리 교육방법론이 다양해졌다지만 여전히 가장 훌륭한 교육법은 교사의 재치넘치는 입담과 수업을 이끌어가는 연기력에 있다. 이는 가르침을 전달하는 기술로써 매우 중요하다. 기실 성경이나 불경을 보라. 분명 예수님과 부처님, 그리고 공자는 상당히 말빨이 뛰어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들 경전에 그렇게 수려한 묘사와 문장이 있을 수가 없다. 교사는 뛰어난 입담꾼이자 연기자이다.

 물론 교사가 이 다섯가지를 다 충족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앞의 두가지는 교사로써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며, 세번째 조건은 훌륭한 스승으로 진입하는 관문이고, 네번째 조건은 직업을 교사로 갖기 위해서는 필수조건이다.또한 다섯가지를 갖춘다면 아마도 전국적으로 많은 학생들을 키워내는 스승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며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었다. 애초에는 내가 일하는 기관의 활동을 홍보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컨텐츠를 고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잘하는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되었다. 몇가지 테마가 있었다. 자연, 텃밭, 산야초, 명상, 무예, 음악 등등 그리고 누구나 좋아하는 맛집 찾아 삼만리까지... 여하튼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잘 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보니 나라는 사람에 대해 확실히 정리가 되었다. 나의 유튜브 채널은 단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 동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공부하며 얻은 수확을 정리하는 공부방이기도 하다. 

 좋아하는 것이 있다 하더라도 꾸준히 정기적인 방송을 제작하려면 또 다시 선별된다. 단지 좋아하기만 할 뿐 남들보다 특출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것들은 컨텐츠로써 매력이 없다. 좋아하면서도 남들보다 특출난 정보를 가진 나만의 장점은 무엇인지 확연하게 알 수 있게 되며, 혹여 그런 것들이 없더라도 남들보다는 조금 앞선 정보를 보유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게된다. 즉,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면 공부하기 딱 좋다!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나와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채널을 운영하는 다른 크리에이터들의 영상을 엄청 많이 분석하고 시청해야한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나의 수준과 위치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요즘은 각 분야의 내노라하는 핵인싸라면 대부분 유튜브를 하게 마련이다. 유튜브는 단지 초등학생들의 유희만이 아니다. 초등학생들의 실없는 장난놀음부터 상당히 전문적 지식과 기능을 보유한 사람들까지 상당히 넓은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모두 유튜브를 한다. 오히려 요즘 세상에 자신을 주장할만한 정보나 기능을 보유하고도 '유튜브?! 그거 초딩들이나 하는거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이다. 정치, 경제, 인문일발 등등 각 분야의 정점에 선 인물들치고 유튜브를 안 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소통하는 공간이 유튜브이다. 그렇다보니 그 사람들을 모두 직접 만나지는 못할테니 적어도 그 사람들의 유튜브 컨텐츠를 부지런히 모니터링 해보면, 자연스럽게 나의 위치와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또한 모니터링의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정보를 습득할 수 있게 된다. 정말 유튜브는 공부가 많이 된다!

 유튜브가 자기계발에 가져다주는 이점은 이 뿐만 아니다. 유튜브는 다른 사람에게 나의 주장이나 정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한다. 즉, 스피치 능력이 엄청 좋아진다. 또한 나라는 캐릭터를 매력있게 구성해나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 아무리 카메라를 보고 말하는 것이지만 막상 유튜브 컨텐츠를 제작하려 실행해보면 생각보다 말과 행동이 상당히 어색하고 잘 안 나온다는 것은 유튜브 컨텐츠를 제작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리고 어렵게 찍은 영상을 나 스스로 모니터링 해보면 발표와 스피치를 할 때 내가 지금까지 좋지 않았던 언어, 행동습관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만든 영상은 정말 보고 또 보고 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사범대를 나와 수업시연을 여러번 해보았다. 하지만 심지어 사범대를 나온 나도 유튜브를 제작할때처럼 내 강의를 이렇게 치밀하게 영상 모니터링 해본 적이 없다. 유튜브 컨텐츠를 제작하다보면 내 강의에 대해 엄청난 모니터링을 하게 된다!

 또한 나라는 캐릭터를 매력있게 구축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지금은 이미지 시대이다.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요즘은 각 분야에서 사람들의 실력이 상당히 평준화 되어있다. 그러니만큼 자신을 이미지 메이킹 하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말 한 마디, 복장과 외모의 스타일에 따라 그것이 타인에게 설득되는 것은 천지차이가 된다. 유튜브는 구독자와 조회수를 확보하기 위해, 즉 사람들의 시선을 휘어잡기 위해 상당히 많은 고민을 하게 된다. 내가 가진 장점과 매력지수는 무엇일까? 이 점에 대해 엄청 고민하고 연구하게 된다. 또한 유튜브 알고리즘의 특징은 '시청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썸네일이나 자극적인 제목으로 구독자나 조회수를 확보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으나 시청을 위해 접속한 시청자를 오랫동안 붙잡아 두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 위해 엄청난 스피치 능력과 이미지 메이킹을 고민하게 된다.

 이렇듯 유튜브에서 얻어진 능력은 단지 유튜브를 하는데만 쓰이지 않는다. 내 전문분야에 대한 치밀한 공부, 다른 전문가와 나를 비교하고 평가해보는 일, 내 강의에 대한 모니터링과 스피치 능력의 향상, 캐릭터의 구축과 이미지 메이킹... 이 모든 것은 현대사회에 정말 주요하게 필요한 능력들이다. 이러한 능력들을 얻고자 한다면 필히 유튜브라는 콜로세움에 뛰어들어 투전사가 되어 보아라. 그 실전성 톺은 경기장에서 엄청난 성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현충일날 춘천에는 감자꽃이 핀다. 감자는 보통 뿌리를 통해 번식시키고 작물을 재배한다. 씨감자라하여 한 해 묵혀둔 감자를 이듬해에 씨눈이 있는 곳을 조각조각 잘라 단면에 숯을 뭍히고 땅에 뭍어두면 감자가 자란다.

 그러면 6월 즈음 이렇게 꽃이  활짝 핀다. 감자는 잎과 꽃을 피우기는 쉽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잎이 아무리 무성하다 하여도 알맹이가 실한 감자를 재배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흔히 구황작물이라 하여 어느 곳에 심어도 잘 자랄 것 같지만 주먹만한 알맹이를 얻기 위해서는 볕도 좋아야하고 두둑도 높게 하고 땅도 부들부들하게 잘 가꿔줘야한다. 고구마와 더불어 뿌리식물이다보니 진흙 같이 땅이 좋지 않으면 잎만 무성할 뿐 잘 자라지 않는다.

 

 감자꽃은 감자처럼 매우 수수하게 생겼다. 단색에 단조로운 생김새의 감자꽃. 그래도 감자밭에 한가득 감자꽃이 피면 웬지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그런데 진짜 궁금한 점은 감자를 씨를 통해 번식시켜 본 적이 없어서 저 꽃에서 씨가 어떻게 열리는지 감자꽃 씨앗은 어떻게 생겼는지 매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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